‘없는 살림’에 무리한 경기부양 후유증… 주변국 연쇄 타격

  • Array
  • 입력 2010년 2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천덕꾸러기 PIIGS
5개국 재정적자 위험수위
유로존 구제금융 마련 과정
형편 나은 이웃 악영향 우려


유럽의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국가들이 세계 경제 회복세의 발목을 잡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이들 나라의 국가부도 우려가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할 새로운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PIIGS 국가들이 막대한 재정적자와 경상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국가부도 상태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유럽→미국→아시아 순으로 연쇄 타격을 받았다. 대외의존도가 높아 작은 악재(惡材)에도 큰 폭의 변동성을 보이는 국내 금융시장도 5일 코스피와 원화가치가 연중 최저치로 떨어지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유로화를 국가통화로 쓰고 있는 유로존 나라들이 숙명적으로 함께 지낼 수밖에 없는 PIIGS 국가들의 재정위기를 조기에 수습하지 못하면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은 금융위기 충격에서 가까스로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는 실물경제로 번질 우려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 ‘빚쟁이 돼지 국가들’ 무엇이 문제인가

PIIGS 문제는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들 국가는 ‘없는 살림’에 빚을 내 흥청망청 나랏돈을 쓴 결과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동시에 불어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2008년 7.7%로 유로존 평균(2.0%)보다 4배 가까이 높았는데 올해에는 12.2%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포르투갈(2.7%→8.0%) 아일랜드(7.2%→14.7%) 스페인(4.1%→10.1%)의 재정적자도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그리스의 국가부도 위험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국제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작년 12월 7일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꿨고, 16일에는 신용등급 자체를 ‘A-’에서 ‘BBB+’로 강등했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달 중순 재정적자의 비율을 2012년까지 3% 아래로 낮추겠다는 자구책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제출해 3일 승인을 받았지만 시장의 신뢰를 되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4일과 5일 유럽에서 미국으로, 다시 아시아로 번진 글로벌 증시 폭락의 결정적 계기는 그리스 공공노조연맹이 정부의 임금동결 대책에 맞서 10일 총파업을 벌일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이는 그리스는 물론이고 나머지 PIIGS 국가의 재정적자 감축 노력이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는 비관론으로 이어졌다. 유럽 국가들이 과도한 국가부채에 허덕이는 PIIGS에 구제금융을 제공할 경우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독일이나 프랑스의 재정 상태도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주가 폭락의 배경이 됐다.

살얼음판 금융시장
실물경제 회복 완연하지만 작은 악재에도 심하게 출렁
“EU가 감당할 수준” 낙관도


○ 돈 풀어 경기 살린 후유증

실물경기의 회복세가 완연한데도 글로벌 금융시장이 악재만 나오면 지나칠 정도로 심하게 출렁거리는 것은 무리한 경기부양의 후유증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주요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어 경제시스템이 붕괴되는 사태는 막았지만 이 과정에서 시중에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이 다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장민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미국의 금융규제 강화 움직임, 중국의 통화긴축 전환에 이어 부각되고 있는 유럽의 재정위기는 결국 경기를 살리려고 풀었던 돈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지금 시점에서 PIIGS의 재정위기가 주목받는 것은 금융위기가 시작되기 전에도 재정형편이 좋지 않았는데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재정건전성이 급속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센터가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8대 리스크를 분석하면서 ‘소버린 리스크(국가부도 위험)’를 첫 번째로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제금융센터는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서 시작된 소버린 리스크는 동유럽, 중동, 중남미 등 신흥국에 국한되지 않고 일부 선진국을 포함한 국제 금융시장 전역으로 점차 확대되는 조짐”이라고 진단했다. ○ 국내 금융시장 불안 당분간 이어질 듯

○ 국내 금융시장 불안 당분간 이어질 듯

국내 금융시장도 당분간 불안한 모습을 보일 확률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국내 증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금융규제 강화를 발표한 지난달 22일과 중국의 긴축정책 전환이 본격화된 29일, 유럽의 재정위기 우려가 커진 이달 5일 등 3주 연속 금요일마다 큰 폭으로 하락했다. 같은 날 외환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어김없이 치솟았다.

국내 증시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의 비중이 큰 탓에 변동폭이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크다. 연초 대비 현재까지 미국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5.4%, 일본 닛케이평균주가가 5.3% 떨어진 데 비해 코스피지수는 7.6%나 급락했다.

당장은 어려움을 겪더라도 지나치게 비관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많다. 김학균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재정위기를 겪는 유럽 국가들의 빚은 아직 유럽연합(EU)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며 “글로벌 위험 신호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국제적 합의가 형성되면 글로벌 주가가 다시 회복될 가능성이 높고 이때는 한국이 먼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