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누명… “어머니 이제 자유인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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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흑인남성 DNA검사로 성폭행 혐의 벗고 가족품으로
19세 청년이 54세 중년돼… “원한 없다, 학교 가고 싶다”

9세 소년을 유괴해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1974년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혀 있던 미국의 한 흑인 남성이 35년 만에 무죄가 입증돼 풀려났다. 19세 때 감옥에 들어간 이 남성은 50대 중반이 돼서야 자유를 되찾았다.

플로리다 주 법원은 17일 유전자(DNA) 검사 결과 제임스 베인 씨(54)가 범행을 저지르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며 석방을 결정했다. 미국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하다 DNA 검사로 무죄가 밝혀져 풀려난 사람은 모두 246명으로 이 중 베인 씨가 가장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한 경우로 기록됐다.

“베인 씨, 당신은 이제 자유인입니다. 축하합니다”라는 제임스 얀시 판사의 말이 떨어지자 법정 안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무죄(not guilty)’라는 문구가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법원을 나선 베인 씨는 “신이 내 편이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원한이 없다”고 담담하게 소감을 밝혔다. 또 “신이 언젠가는 나의 무죄를 밝혀 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의 석방을 도왔던 ‘플로리다 무죄 프로젝트’의 세스 밀러 변호사는 “그 어떤 것도 베인 씨가 잃어버린 시간을 대체할 수 없다”며 “오늘은 부활의 날”이라고 말했다.

베인 씨는 이어 생애 처음으로 휴대전화를 이용해 77세가 된 어머니에게 석방 소식을 알렸다. 베인 씨가 감옥에 들어간 1974년에는 휴대전화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건강 악화로 자주 병원 신세를 지고 있어 이날 법원에 나오지 못했다. 베인 씨는 웃음을 머금은 채 “어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며 “(자신이 소유한) 집과 자동차를 아들 명의로 바꾸겠다”고 덧붙였다.

베인 씨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채 “칠면조 요리와 ‘닥터 페퍼’ 음료수를 먹고 싶다”며 “학교에 다시 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베인 씨는 당시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조사 결과가 있었음에도 피해자의 증언에 의존해 범인으로 몰렸다. 피해 소년이 범인에 대해 짧은 구레나룻과 코밑수염이 있었다고 말했고 경찰이 제시한 5명의 용의자 사진 중에서 베인 씨의 사진을 지목하는 바람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됐다.

베인 씨는 플로리다 주가 2001년 예전 사건에 대해 DNA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법령을 통과시키자 희망의 빛을 발견했다. 이후 DNA 검사가 자신의 결백을 밝혀줄 것으로 믿고 4차례나 신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플로리다 주가 지난해 복역 중인 사람이 나중에 무죄로 밝혀질 경우 보상하는 법률(1년당 5만 달러)을 통과시킨 덕분에 35년간 옥살이를 한 베인 씨는 175만 달러(약 20억6000만 원)를 받게 될 것이라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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