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카 착용여성 거리서도 통제해야 하나”

  • 동아일보

“이민자출신 축구대표가 佛국가 모르는데…”

佛‘국가 정체성 토론회’ 시작

‘프랑스인이란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의미심장한 질문을 하는 ‘국가 정체성’에 대한 국민 대토론회가 25일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이날 1차로 지방별 일정에 따라 수백 건의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내년 1월 31일까지 두 달여간 계속된다. 원칙적으로 모든 국민은 지방정부가 조직하는 각종 토론회에 참석할 수 있다.

프랑스가 갑자기 자신을 향해 ‘정체가 무엇이냐’고 묻게 된 것은 유럽에서 이민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라는 데서 비롯된다. 특히 북아프리카 등에서 온 이슬람계 이민자가 약 500만 명으로 서유럽에서 가장 많다.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 정교분리 관용 등의 공화적 가치를 지켜 왔다고 자부해 왔지만 2005년 아랍과 흑인 이민계 청소년 수천 명의 소요 사태 이후 그런 자부심은 무너졌다.

외국인에게 바칼로레아(대학입학자격시험)의 난해한 철학 문제처럼 보이는 이 토론회의 주제는 프랑스인들에게는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부닥치는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이슬람 여성들이 쓰는 전신 가리개 부르카 착용에 대한 논란이 크게 일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프랑스에서 여성의 굴종을 위한 장소는 없다”는 말로 부르카 착용을 비판했다. 이미 부르카를 착용하고 등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그러면 앞으로는 길거리에 나서는 것까지 금지해야 하는가, 토론 주제 중 하나다.

또 프랑스 축구대표팀에는 아랍이나 흑인 이민자 집안 출신이 많다. 이들 중에는 경기 시작 전 부르는 국가(國歌)인 ‘라 마르세예즈’를 따라 부르지 못하는 선수도 있다. 그렇다면 초등학교 때부터 국가를 가르치고 1년에 한 번씩 꼭 부르게 해야 하는 것인가. 이와 함께 얼마 전 알제리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을 때 파리 마르세유 등 프랑스의 대도시는 알제리계 이민자들이 들고 나온 알제리 국기(國旗)로 뒤덮인 적이 있다. 이날 프랑스도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됐는데 삼색기는 잘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프랑스가 맞는가. 이런 모든 문제가 토론회에서 거론됐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시동을 건 이 토론회의 당초 취지는 “말만 꺼내면 극우로 몰리기 쉬운 문제를 툭 털어놓고 얘기 한번 해보자”는 것이었지만 논의되는 주제들이 대체로 반(反)이민적 색채를 띠고 있는 게 사실이어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야당인 사회당의 실력자 뱅상 페용 의원은 “프랑스는 한번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얘기해본 적이 없는 나라”라며 “이런 주제로 토론회를 여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했다. 같은 사회당의 장크리스토프 캉바델리 의원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2001년 이후 모든 선거 전에 이민과 국가 정체성을 쟁점으로 삼았음을 지적하면서 “내년 3월 지방선거를 앞둔 또 다른 수작”이라고 비판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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