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상처 주지 맙시다’… 美-日 정상 쟁점은 쏙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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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4일 03시 00분


■ 오바마 어제 방일깵 하토야마와 정상회담
日, 아프간 5년간 50억달러, 파키스탄에 20억달러 지원
2050년 온실가스 80% 감축, 북핵 해결 공동대처 합의
대립했던 미군기지 문제 “가능한 한 빨리 해결” 넘겨

《버 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3일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해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이날 1시간 30분간 진행된 회담에서 미일 동맹을 주축으로 하는 양국의 지속적 발전을 다짐했다. 또 ‘한반도의 불가역적이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와 북한의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6자회담 복귀’를 촉구했다. 양국 간 불협화음을 낳고 있는 오키나와(沖繩) 현의 후텐마(普天間) 주일미군 기지 이전 문제와 관련해 하토야마 총리는 “각료급 워킹그룹을 구성해 가능한 한 빨리 해결하겠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논의는 미뤄졌다. 이견이 있는 현안은 제외해 갈등을 드러내지 않고, 공유할 수 있는 현안에만 집중하자는 전략으로 양국이 임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미일 동맹관계 강화 및 아프간 지원 강화 합의

오바마 대통령과 하토야마 총리는 이날 총리관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미일 동맹,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양국 협력, 핵군축 및 지구온난화 등 글로벌 문제에 대한 공동대처 등을 집중 논의했다. 특히 양국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비핵화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핵 문제에 대해 매우 폭넓게 의견을 나눴다”면서 “동아시아의 안전보장을 위해 북한의 비핵화가 필요하다. 북한에는 국제사회에 참여할 문이 활짝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두 정상은 내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 50주년을 맞이하는 만큼 양국 간 동맹관계를 한층 강화하자는 데도 의견을 함께했다. 대등한 대미 외교를 주창하고 있는 하토야마 총리 집권 이후 소원해진 양국 관계를 ‘미일 동맹’ 정신에 기초해 회복하자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일본은 올해부터 5년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 각각 50억 달러와 2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지원금은 아프간 수도 카불의 도시 재건과 경찰관 훈련 및 급여 지원, 테러리스트의 직업훈련 등에 쓰일 예정”이라면서 “오바마 대통령도 이에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양국 관계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대(對)테러 전략에 중점을 두고 있는 아프간 문제에 일본이 동맹국으로서 나름의 성의를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양국 정상은 핵 없는 세계를 목표로 한 핵군축과 지구온난화 대책, 에너지 분야와 관련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핵군축과 지구온난화 문제는 모두 오바마 정권이 들어선 이후 채택된 미국의 중점 정책으로 양국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특히 핵군축과 관련해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올해 4월 표방한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결의를 양국이 재확인하고 핵 비확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모든 핵보유국의 투명성을 담보한 핵군축 촉진 등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양국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80% 감축하는 내용의 지구온난화 대책과 이산화탄소의 지중저장기술 및 에너지절약기술의 공동연구 등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양국은 동아시아 안정뿐만 아니라 글로벌 문제에서도 서로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면서 “다양한 수준의 미일 협력은 양국관계의 심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후텐마 기지 이전과 주일미군 지위협정 등 과제 남아

이날 두 정상은 공통의 화제에 집중해 지속적인 협력을 다짐했지만 이번 정상회담으로 양국 관계가 개선될지는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뉴욕타임스는 요즘 미일 관계가 1990년대 무역분쟁 이후 가장 심각한 냉각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실제 일본 언론도 이번 회담으로 풀린 문제보다 후텐마 기지 문제 등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고 분석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날 후텐마 기지 이전에 대해 “자민당 정권과 미국 정부가 맺은 기지 이전 약속을 존중하지만 기지 이전 문제의 재검토는 민주당의 공약”이라며 미국 측의 이해를 구했다.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도 “정권교체 이후 들어선 새 정권이 국가의 나아갈 바를 다시 검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미일 간에 남아 있는 현안들은 외교적 수사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대등한 대미 외교를 내세우고 있는 하토야마 정권의 대외전략 정체성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하토야마 총리의 대미관이 종전의 자민당 정권과 크게 다르다는 게 양국 관계의 큰 걸림돌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최근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일본을 지켜주는 상황이어서 미국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 “좀 더 주체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하토야마 총리는 ‘미일 간의 대등한 관계’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토야마 정권이 당장 내년부터 추진 예정인 △주일 미군의 지위와 관련한 ‘미일 지위협정’ 개정 △주일미군 주둔경비에 대한 일본 부담액 삭감 역시 양국이 풀어야 할 쉽지 않은 과제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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