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간 납치소녀 고향마을… 지워지지 않는 상처’ NY타임스

  • 입력 2009년 9월 8일 05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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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살 때 납치됐다가 18년만에 극적으로 풀려난 제이시 두가드(29)가 살던 마을은 아직도 응어리진 상처가 풀리지 않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7일(현지시간) A섹션 7면에 제이시가 살던 캘리포니아 사우스레이크 타호를 취재한 기사에서 “지난 18년간 마을사람들에게 제이시는 아픈 마음의 생채기로 남아 있다. 그녀는 큰 소나무가 있는 집에서 닭을 키우며 사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보통의 소녀였다”고 말했다.

6일 사우스레이크 타호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펼쳐졌다. 제이시가 살던 옛 집에는 핑크색 리본이 둘러졌고 길가의 나무에도, 전화부스에도 리본과 풍선들이 줄줄이 달렸다. 약 2000명의 사람들이 모여 제이시의 생환을 축하하는 퍼레이드를 준비했다.

그러나 정작 제이시와 그녀의 가족들은 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간 입은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던 탓이다.

제이시가 당시 다녔던 초등학교의 카렌 질리스-틴린 교장은 “이번 행사는 제이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납치 사건은 큰 슬픔이었고 이 마을을 영원히 바꿔버렸다”고 아픈 상처를 되새겼다.

타운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안젤라 구치(30) 씨는 이곳에서 자랐고 제이시 또래의 친구들이 있다. 그녀는 “이곳은 작은 마을이다. 우리들 중에 제이시 두가드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제이시라는 이름은 실종된 아이의 대명사였고 매년 그녀를 기억하기 위한 핑크색 리본이 숲 덤불을 수놓았고 아이들의 가방과 차량 안테나에 매어졌다.

구치 씨는 “어렸을 때 친구들과 숲속에 들어가서 제이시를 찾아보곤 했다”면서 “숲만 보면 늘 그녀의 기억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제이시는 지금도 내 기억속에 어린 소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제이시와 두 블록 떨어진 이웃의 친구였던 스테파니 러셀(29) 씨는 함께 스쿨버스를 타곤 했다. 방과후엔 서로의 집에서 전화통화를 늘상 했고 제이시 집의 닭에게 모이도 주고 나무 아래서 놀곤 했다“고 회상했다.

“제이시도 나도 수줍어하는 성격이었다“는 그녀는 유괴사건이 일어난 그 주에 제이시의 부모가 걸어서 두사람이 중간지점에서 만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 운명의 갈림길이 됐다면서 “제이시가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나를 향해 걸어오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1991년 6월 어느날 제이시는 그렇게 길을 걷다가 언덕 근처에서 필립과 낸시 게리도 부부에게 납치됐다. 당시 제이시는 5학년이었다.

유괴된 이후에도 친구들은 제이시를 결코 잊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식에서도 그들은 제이시에 대해 추억하는 이야기를 했다. 질리스-틴린 교장은 “아이들과 함께 제이시가 늘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 사이엔 연결고리 같은 것이 있었다”고 말했다.

제이시가 납치된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도 제이시를 잘 알고 있다. 제이시 유괴사건은 부모들에게 두려움의 근원이었다. 제이시의 친구들 중 일부는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구치 씨 역시 10살 된 딸이 있다. 딸에게 유괴의 위험을 얘기할 때는 어김없이 제이시 얘기가 나온다.

지난 18년간 제이시의 이야기는 마치 괴물에게 납치된 무서운 공포물의 주인공처럼 아이들에게 구전됐다. 경찰은 제이시의 납치범들을 험상궂은 눈과 움푹 패인 볼을 가진 사람들로 묘사했다.

그 와중에 또다른 피해자도 있었다. 제이시의 의붓아버지, 칼 프로빈 씨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의붓딸의 납치에 관여된 인물로 의심하고 경원시했다. 사건이후 그는 마을의 왕따가 되었다. 그는 벽지를 바르는 일을 했지만 더 이상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다.

러셀 씨는 제이시에 관한 뉴스자료와 빛바랜 핑크리본들을 보관한 스크랩북을 한 장씩 넘기면서 “난 제이시를 늘 생각했다. 그녀가 어디론가 납치돼 운명이 달라지게 된 그때의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우리가 어렸을 때 시작된 아픈 이야기를 이제는 정말 끝내고 싶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뉴욕=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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