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여성후보들 남장하고 목숨 건 유세

  • 입력 2009년 8월 18일 02시 55분


터번에 헐렁한 바지, 긴 셔츠. 아프가니스탄 지방의회 선거에 출마한 오크미나 후보가 아프간 남성의 전통 복장 차림으로 집을 나서고 있다. 코스트=로이터 연합뉴스
터번에 헐렁한 바지, 긴 셔츠. 아프가니스탄 지방의회 선거에 출마한 오크미나 후보가 아프간 남성의 전통 복장 차림으로 집을 나서고 있다. 코스트=로이터 연합뉴스
유세장 가는 길16일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서 이슬람 전통 여성복장인 부르카를 입은 여성 유권자들이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대선 유세를 듣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탈레반은 이날 투표소 공격 협박을 담은 유인물을 남부지방 등에 뿌려 아프간 정부를 긴장시켰다. 20일 동시에 실시되는 대통령선거 및 지방의회 의원 선거에는 1700만 명의 유권자가 투표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칸다하르=AFP 연합뉴스
유세장 가는 길
16일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서 이슬람 전통 여성복장인 부르카를 입은 여성 유권자들이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대선 유세를 듣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탈레반은 이날 투표소 공격 협박을 담은 유인물을 남부지방 등에 뿌려 아프간 정부를 긴장시켰다. 20일 동시에 실시되는 대통령선거 및 지방의회 의원 선거에는 1700만 명의 유권자가 투표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칸다하르=AFP 연합뉴스
살해위협에 부르카 대신 터번 두르고 권총 휴대
지방선거 출마자 10%차지… 무장경찰 경호받아

20일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지방의회 선거에서 시골지역인 코스트에 출마한 오크미나 후보는 매일 아침 검은색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권총을 찬 뒤 유권자를 만나러 집을 나선다. 헐렁한 바지와 긴 셔츠 차림만 보면 영락없는 아프간 남성이지만 입을 열면 금세 여성임을 알 수 있다.

그는 34개 지역에서 420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지방의회 선거에 출마했다. 오크미나와 같은 여성 후보는 모두 328명이나 된다. 후보자가 총 3196명이니 여성후보 비율이 10%가 약간 넘는다.

오크미나 후보는 남성 복장을 하는 이유를 “여성 신분으로 위험한 오지까지 가서 유세를 하기엔 치안이 너무 안 좋다”라고 말했다.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는 아프간의 뿌리 깊은 보수성 때문에 여성 후보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시선이 곱지 않을 뿐 아니라 살인 협박까지 가해지면서 유세를 취소하거나 포기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6일 아프간 헌법은 지방의회 의석의 25%를 여성 몫으로 할당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아직도 여성의 정치 진출을 전통에 대한 도전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오크미나 후보는 “아프간에서 여성은 권리가 없다. 있다 해도 보잘것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권자들은 성별이 아니라 후보의 자질을 봐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재선에 도전하는 나트비비 오마리 코스트 의원은 자신의 정치활동으로 인해 시동생 2명이 살해되고 조카가 장애를 겪는 불운을 겪었다. “여성은 밖에서 일해서는 안 되고 특히 정치는 안 된다. 따르지 않으면 목이 달아날 것이다”라는 끔찍한 살해 협박을 받아오다가 굴복하지 않자 테러를 당한 것. 요즘도 총으로 무장한 아들과 남편,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출퇴근한다.

공직에 출마한 여성 후보에게 살해경고를 보내온 탈레반은 협박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4월 여성 인권운동가이자 지방의원이던 시타라 아치크자이 씨가 목숨을 잃었고 지난해에는 칸다하르 경찰 여성 고위간부가 살해됐다.

한편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은 선거를 나흘 앞둔 16일 TV 토론회에 처음으로 나왔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최근 여론조사 결과 44%의 지지율로 대선후보 37명 가운데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대선후보인 아슈라프 가니 전 재무장관과 라마잔 바샤르도스트 의원은 카르자이 대통령이 군벌을 선거에 끌어들인 점을 집중 비난했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1990년대 내전에서 대량 학살을 저지른 혐의를 받는 타지크인 군벌 지도자 모하메드 파힘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