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장관은 남편이 아니라 나요”

  • 입력 2009년 8월 12일 03시 00분


Mr.클린턴 뜨자 Mrs.클린턴 예민해졌나
남편 생각 묻는 질문에 발끈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정치 인생에서 '빌 클린턴의 아내'라는 사실은 행운일까, 아니면 굴레일까.

예일대 법학대학원 출신의 명석하고 야심 찬 변호사였던 힐러리는 남편 덕분에 백악관 안주인이 돼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지만 동시에 남편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 꿈을 미뤄야만 했다. 남편의 성추문은 여인으로서의 삶에 큰 상처를 안겼지만 상원의원 진출에 동정표를 몰아주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클린턴 장관이 10일 아프리카 콩고에서 표출한 '이례적인 짜증'은 주목 받기에 충분했다. 클린턴 장관은 이날 콩고 수도 킨샤사에서 젊은이들과의 공개포럼을 가졌다. 한 흑인 남자 대학생이 "중국이 콩고에 대규모 차관을 주는 걸 세계은행이 방해하고 있다. 이 문제를 '미스터 클린턴'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미시즈(Mrs.) 클린턴'의 입을 통해 듣고 싶다"고 질문했다.

동시 통역을 통해 질문을 들은 클린턴 장관은 한동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내 남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달라는 거냐?"고 되물으며 "내 남편이 국무장관이 아니라 내가 국무장관"이라고 말했다. 매우 공격적이고 되쏘는 듯한 음성이었다. 클린턴 장관은 이어 "내 의견을 묻는다면 얘기해 주겠지만 내 남편의 생각을 전달하는 역할은 하지 않겠다"고 한뒤 고개를 돌려 질문자를 외면해 버렸다.

그러자 당황한 사회자가 급히 주제를 옮겨 분위기를 수습했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이 대학생은 나중에 클린턴 장관에게 다가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생각을 들려달라고 질문하려고 했는데 빌 클린턴이라고 잘못 얘기했다"고 해명했고, 클린턴 장관은 "알겠으니 마음 쓰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이 짧은 소동은 클린턴 장관이 오랜 '로 키' 행보에서 벗어나려는 시점에 일어났다. 클린턴 장관은 취임 후 TV 대담프로 출연을 거의 사양하고 공식행사장에선 항상 대통령의 뒤편 수행원들 속에 묻히기를 자청하는 등 '겸손 모드'를 이어왔다. 그러는 사이 대통령과 부통령의 요란한 국제 행보가 계속됐고 대통령이 임명한 거물급 특사들이 외교현장에서 국무부를 제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클린턴 장관은 취임 6개월째인 7월 15일 외교안보정책 연설을 계기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인도 태국에 이어 지난주 초 아프리카 7개국 순방에 나섰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남편의 북한 방문 뉴스가 터지면서 아프리카 순방은 뉴스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수행 기자들의 질문조차 남편의 방북에 모아졌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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