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안먼 사태 촉발시킨 리펑 시위현장 갔다 겁먹고 도망

  • 입력 2009년 5월 16일 02시 54분


中자오쯔양 前총서기 회고록서 드러난 진실들

《“유혈 진압으로 끝난 6·4 톈안먼(天安門) 사태는 리펑(李鵬) 당시 총리 등 보수 강경파가 아니면 피할 수 있었다. 시위는 ‘반사회주의’라고 규정한 런민(人民)일보 사설 때문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는데, 그 사설은 리펑 등이 덩샤오핑(鄧小平) 최고지도자의 말을 각색한 것이었다. 하지만 6·4사태에 대한 책임은 궁극적으로 덩 최고지도자가 져야 한다.” 1989년 6월 4일 톈안먼 민주화 시위 당시 강제진압에 반대하다 실각한 뒤 가택연금 됐다가 2005년 1월 사망한 자오쯔양(趙紫陽) 전 공산당 총서기의 사후 회고록 ‘국가의 죄수(The Prisoner of the State)’에 나오는 내용이다. 회고록은 14일 미국의 ‘사이먼 앤드 슈스터’ 출판사에 의해 출간됐다.》

“지도부 강경 발언 유출 - 시위 학생들 격분시켜…‘역사적 책임’은 덩샤오핑”

실각 20년, 사후 4년 만에 나온 회고록은 리펑이 시위 학생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해 덩샤오핑에게서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고 리펑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는 등의 새로운 사실을 공개했다.

‘그래도 핵심은 덩샤오핑 최고지도자’

“1989년 4월 25일 덩샤오핑과 리펑, 당 지도부는 내부 모임을 갖고 4월부터 시작된 톈안먼 시위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 덩샤오핑은 학생 시위가 안정을 해친다는 평소 소신을 얘기했지만 자신의 발언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리 총리와 천시퉁(陳希同) 베이징 시장 등 보수 강경파가 동의 없이 덩 최고지도자의 말을 각색한 뒤 톈안먼 시위를 ‘반당(反黨), 반사회주의’로 규정하는 사설을 다음 날인 26일 런민일보에 실었다. ‘동란(動亂)에 선명히 반대하는 기치를 들어야 한다’는 제목의 이 사설은 시위대를 자극했다. 결국 평화(시위)는 불가능했다.”

당 기관지의 사설은 곧 최고지도자의 의중으로도 읽힌다. 자오쯔양은 골수 보수파의 이 같은 행동으로 톈안먼 사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전했다. 자오쯔양은 시위 무력진압 결정은 골수 보수파들의 이런 음모와 권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덩샤오핑의 조바심 때문에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자오쯔양은 학생시위 무력진압의 최종 책임은 최고권력자였던 덩샤오핑이 져야 하며 “덩샤오핑은 학생 시위 대처에 ‘거친 대책’을 선호하고, 안정을 위해서는 독재의 효율성을 강조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장쩌민과 리펑의 소심

자오쯔양은 리펑이 유혈사태의 핵심이지만 시위 중인 학생들과는 직접 만나기를 꺼린 ‘겁쟁이’라고 묘사했다. 리펑은 5월 19일 자신과 함께 톈안먼 광장에 갔으나 도착 즉시 시위대의 기세에 눌려 현장에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는 것. 리펑은 자신이 학생들을 만나러 나갈 때 길을 막고 나서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도 했다고 전했다. 자오쯔양은 또 리펑은 자신이 경질되기 훨씬 전부터 방송 카메라맨들에게 “자오쯔양을 찍지 말라, 앞으로 지도부 교체에 불편하다”고 할 만큼 이미 자신을 제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소개했다.

6·4 당시 상하이(上海) 당서기였던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은 베이징 시위 사태에는 직접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 상하이에서도 격렬했던 학생시위에 적극 대처해 덩샤오핑과 원로들에 의해 총서기직에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자오쯔양은 장 전 주석도 상하이에서 시위대에 압도돼 오히려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가택 연금 중 녹음해 몰래 반출해 출판

자오쯔양의 회고록은 연금 기간에 비밀리에 녹음한 30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테이프를 토대로 집필됐다. 테이프는 자오쯔양의 절친한 친구 3명이 몰래 중국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중국어판 회고록 ‘개혁역정(改革歷程)’도 이달 말 출간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자오쯔양의 회고록은 오랜 가택연금 생활을 하면서 느낀 고독감과 고통이 솔직하게 드러났다며 고립의 고통 속에서도 대체적으로 객관적이고 차분하게 유혈사태 전후의 상황을 전했다고 평가했다. 또 장 전 주석 등에게 수차례 편지를 보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연금에서 풀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사연도 담겨 있다. 자오쯔양의 정치비서인 바오퉁(鮑동)은 “자오쯔양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선호했다”며 “이 책의 출간은 현 중국 지도부에도 국가 운영과 공산당의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자오쯔양 회고록이 대륙에서는 금서(禁書) 목록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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