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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4월 22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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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10년’ 우려
영국과 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이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물가지수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유럽이 디플레이션 공포에 떨고 있다.
영국의 국가통계국은 21일 “3월 소매물가지수(RPI)가 1년 전에 비해 0.4%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소매물가가 떨어진 것은 1960년 3월 이후 49년 만에 처음”이라고 밝혔다. AFP통신은 “집값, 가스와 원유 가격, 교통비 하락 등이 물가 하락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소매물가지수는 임금협상과 연금지급 기준이 되기 때문에 물가 하락으로 많은 근로자가 임금 삭감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학자 콜린 엘리스 씨는 “영국의 소매물가지수 하락이 1959년 6월 기록한 ―0.8%의 기록을 깨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지속적인 물가 하락 가능성을 내비쳤다.
또 스페인의 3월 물가도 1961년 이후 48년 만에 처음으로 하락해 3월 소비자물가지수가 ―0.1%로 나타났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1일 보도했다. 스페인의 물가는 가격 변동 폭이 큰 생선(―6.2%), 설탕(―5.7%) 등 식료품뿐 아니라 가격이 상대적으로 안정됐던 약품, 의료서비스, 신발류, 의복, 가전제품까지 전반적으로 하락했다. 스페인 정부는 “물가가 올여름까지 계속해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영국과 스페인의 물가 하락은 유럽에 디플레이션 공포를 확산시키고 있다. 아일랜드 스위스 포르투갈 룩셈부르크의 3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0.3∼0.7% 하락했다. 독일의 3월 도매물가는 8%나 떨어져 1987년 이후 가장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스페인의 페어맥스사는 올해 초 주택과 건물에 설치하는 비디오 인터콤 판매가격을 30% 정도 낮췄다. 자국의 주택경기 침체로 1분기 인터콤 주문 실적이 25%나 줄었기 때문. 로이터통신은 “10년간 주택경기 호황을 구가했던 스페인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 거품 붕괴가 겹치면서 스페인 내전(1936∼1938년) 이후 최악의 경제침체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스페인의 실업률은 현재 27개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가장 높은 15.5%에 이르며 곧 20%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경제학계 일각에서는 지속적인 물가 하락에 따른 디플레이션이 마이너스 경제성장보다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소비자들에게 가격 추가 하락을 기대하게 함으로써 소비를 멈추게 할 뿐 아니라 수익률이 떨어진 기업이 인원 감축에 나서 실업률이 높아지는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
NYT는 “디플레이션은 1930년대 대공황과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가져왔던 가장 큰 요인”이라며 “유럽발 디플레이션은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