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국부펀드, 산은-우리금융 노린다

  • 입력 2009년 2월 11일 02시 57분


두바이투자공사, 작년 8월 한국에 금산분리 완화 요구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 20억 달러를 국내에 투자하겠다고 했던 두바이투자공사 경영진이 작년 8월 방한해 산업은행과 우리금융지주 지분 인수를 위해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2007년 초에는 카타르투자청이 우리금융 지분 20%를 수의계약 형태로 매입하려 하는 등 최근 2년간 중동 국부펀드들이 국내 은행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타진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는 당초 중동 국부펀드가 사회간접자본(SOC) 개발 등 경제성장에 직접 도움이 되는 분야에 투자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정작 이 펀드들은 매각에 제한이 있는 금융회사에 눈독을 들인 것이다. 》

애초 20억달러 공동펀드 설립 SOC에 투자 뜻… 실상은 금융-조선사에 눈독

○ 방산업체 대우조선해양에도 관심

10일 복수의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국부펀드인 두바이투자공사의 모하메드 알 샤이바니 사장은 지난해 8월 박병원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만나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4% 넘게 보유하지 못하도록 한 금산분리 규정을 풀어달라고 건의했다. 산은과 우리금융의 민영화 때 대규모 지분을 인수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금산분리 규정이 완화되지 않으면 두바이투자공사는 산업자본에 해당돼 한국의 은행지분 인수에 걸림돌이 많다.

당시 박 수석은 “금산분리 문제는 규제완화 계획에 따라 검토할 예정”이라며 “산은은 민영화에 시간이 걸리므로 단기적으로는 우리금융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또 “두바이투자공사가 어떤 금융회사 지분을 얼마나 인수할지를 제시하면 우리금융 등의 지분매각 계획을 짤 때 고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서 두바이투자공사는 국내 금융회사뿐 아니라 최근 매각이 무산된 대우조선해양에 투자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박 수석은 “방산업체여서 경영권 매각이 금지돼 있다”며 “국내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분 10% 한도 내에서 투자하는 게 좋겠다”고 답했다.

알 샤이바니 사장은 지난해 2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만나 20억 달러 규모의 ‘한-두바이 펀드’를 설립해 한국 SOC에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로는 수익기반이 탄탄한 국내 초대형 은행과 조선사에 더 관심이 있었던 셈이다.

○ 카타르투자청, 수의계약 요구하기도

이에 앞서 2007년 2월에는 카타르의 하마드 알사니 부총리 겸 외교장관이 당시 정부의 최고위층을 만나 예금보험공사가 보유 중이던 우리금융 지분 78% 중 20%를 카타르투자청이 수의계약으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카타르투자청의 우리금융 지분 인수 의사에 대해 정부는 ‘카타르투자청이 산업자본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아 4% 이하의 지분만 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방침에 카타르 측이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음에 따라 우리금융과 관련한 구체적인 협상은 시작되지 않았다.

이후 예보는 경영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정도의 지분을 조금씩 시장에 팔아 현재 지분을 72.97%까지 낮췄다.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지배 지분과 관련된 매각 일정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 국부펀드 ‘큰손’ 아부다비투자청 행보 주목

글로벌 금융위기 심화로 중동 자본의 투자 여력이 크게 위축된 데다 금산분리 완화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두바이투자공사의 국내 투자는 더는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도 “두바이투자공사와의 관계가 완전히 중단된 상태”라고 확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 6월 아랍에미리트의 다른 국부펀드이며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청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해 정부 당국자와 투자 협의를 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두바이투자공사나 카타르투자청 등 중동 국부펀드의 행보를 고려할 때 아부다비투자청도 산업은행 우리금융 대우조선해양 등에 관심을 보일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경제 부처의 한 당국자는 “두바이에 비해 아부다비의 자금 사정이 낫기 때문에 좋은 매물이 있다면 아부다비가 돈줄을 풀 수도 있다”면서도 “중동 국부펀드들이 최근 투자 방향을 금융업에서 다른 산업으로 옮기고 있어 규모가 큰 투자 유치나 인수합병(M&A) 거래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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