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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1월 2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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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없어 국민의 존경 한몸에
마땅한 정국 해법을 찾기 어려운 가운데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개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푸미폰 국왕은 지금까지 정치적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중재자 역할을 했다.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태국 사회의 어떤 정치 지도자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푸미폰 국왕의 카리스마는 뛰어난 도덕성과 국민을 위한 헌신적 노력에서 비롯된다. 그는 1946년 즉위 이래 단기간의 승려 생활을 경험한 후 수많은 불교 행사를 주재하고 공덕 행위를 일상화해 왔으며 태국 정치에서 고질이 돼버린 부정부패 스캔들에 단 한 번도 연루된 적이 없었고 사생활도 유난히 깨끗했다. 이런 엄격한 종교적 윤리성을 바탕으로 한 성실한 생활 자세가 카리스마의 밑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국리민복을 위해 진정으로 헌신할 줄 아는 지도자였다. 푸미폰 국왕은 1년의 절반 이상 지방을 방문해 국민과 직접 접촉하고 생활수준이 열악한 농촌 지방의 삶의 개선을 위해서 노력했다. 그는 태국판 새마을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3000개 이상의 국왕개발계획을 추진해 국민의 복지 향상을 이뤄냄으로써 국민에게 존경을 받고 카리스마를 갖게 됐다.
이런 이유로 푸미폰 국왕은 사회적 영향력은 물론이고 입헌군주에게 금기로 여겨지는 정치적 영향력까지 행사할 수 있었다. 푸미폰 국왕은 정당성이 확립되지 못한 태국 정치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해 왔다. 1932년 쿠데타 후 태국에는 절대군주제가 붕괴되고 입헌군주제가 도입됐지만 다른 제3세계 국가와 같이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했다. 지금까지 쿠데타가 18차례나 발생했으며 내각 교체 사례도 거의 60차례나 된다. 연이은 쿠데타를 통해서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이나 취약한 민간정권은 정당성의 공백을 카리스마를 가진 국왕의 힘을 빌려 메워 왔다.
현재의 태국 정치구도는 친탁신파와 반탁신파의 대립으로 설명할 수 있다. 흔히 반탁신파를 존왕파라고 부름으로써 친탁신파가 국왕을 반대하는 세력인 듯한 오해를 하게 된다. 사실은 양 세력 모두 국왕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치열하다. 수완나품 공항을 점거하고 있는 반탁신 세력의 공통점은 노란색 상의를 입었다는 점이다. 노란색은 국왕이 태어난 월요일의 색이니 국왕이 자신들의 편에 서 있다는 상징성을 보이려는 것이다.
정치세력들의 국왕 끌어들이기
친탁신 세력도 이런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얼마 전 대법원으로부터 비리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고 망명 중인 탁신도 국왕과 국민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왕의 사면을 애타게 호소했다. 탁신은 2년 전 쿠데타로 물러났다가 금년 초 다시 귀국하면서 가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국왕의 발밑에 꿇어 앉아 큰절을 올리는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이같이 입헌군주인 국왕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정치 현실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현재와 같은 정치 위기로부터 국왕이 초연할 수 없다는 데 태국의 고민이 있다.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태국 사태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푸미폰 국왕과 같이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김홍구 한국태국학회 회장 부산외국어대 태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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