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8년 11월 7일 02시 58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의 압승으로 귀결된 미국 대선은 국제사회는 물론 우리나라에도 고차원의 화두를 던졌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해결 과정에서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이며, 그 속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좌표를 설정해야 하는 것일까. 동아일보는 미 대선의 의미를 짚기 위해 6일 본사 14층 회의실에서 현인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의 대담을 마련했다.》
현인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북문제, 새정부 출범후 현실적으로 바뀔 가능성
북핵 ‘완전 비핵화 - 한미공조’ 원칙 주지시켜야
자유민주주의 - 시장경제 공동가치로 협력 강화”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
“금융위기 국제공조 ‘다자주의 전환’ 압력 작용
美 보호주의로 통상정책 방향 틀지는 않을 것
양국 공통관심 ‘녹색성장’ 기술 적극 투자해야”
▽현 교수=오바마의 당선은 미국 내부는 물론 국제질서의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나온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미국 민주주의 200여 년 역사에서 처음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것은 단순한 선거혁명이 아니다. 그동안 미국 사회에 내재됐던 기본적인 문제들이 이번 대선 과정에서 마그마처럼 분출하면서 폭발한 것이다. 또 일국주의가 막을 내리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는 20∼30년간 유지될 것이다. 다만 금융위기 대처 과정에서 국제 공조의 중요성이 확인된 만큼 공화당 정부 8년간의 ‘미국 일극(一極)체제’에서 ‘일극적 다극체제’로 국제질서가 바뀔 것이다.
▽김 원장=경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기축통화의 발권력을 가진 미국의 일방주의가 국제경제 질서를 주도해 왔지만 금융위기 이후 국제 공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오바마는 미국의 방식을 결정해 강요하는 일방주의가 아니라 각국의 상황과 의견을 통합해 큰 질서를 만들어 가는 다자(多者)주의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이해 당사국이 참여하는 다원적 시스템 하에 참여국의 공동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국제질서가 변화할 것이다. 금융위기와 미국 대선을 놓고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과장된 표현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자유시장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정부의 규제가 없는 진공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다. 시장에 대한 믿음을 깬 것은 아니라고 본다.
▽현 교수=미국의 통상정책은 미국 경제의 상황과 직결돼 있다. 공화당 정부든 민주당 정부든 미국은 자국 경제가 어려울 때면 다른 국가에 다양한 보호정책을 써 왔다. 세계 경제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미국은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전략적이고 선제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다. 우리도 국제 공조와 협력을 통해 국제 질서 변화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김 원장=국내에서는 오바마가 보호무역주의로 미국의 통상정책 기조를 바꿀 것이라는 예측이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다. 오바마는 공정무역(Fair Trade)을 기반으로 하는 신(新)통상질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불공정 협정이나 잘못된 관행으로 인해 미국 내에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오바마는 통상정책에 노동과 환경을 연계시키겠다고 했다.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에는 도전이 되겠지만 이미 노동 환경 분야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도달해 있는 우리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미국이 제시하는 어젠다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 오히려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오바마가 제시한 ‘저탄소 녹색성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주창한 ‘녹색성장’과도 개념이 일치한다. 우리도 세계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를 기회로 받아들여 관련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이다.
▽현 교수=오바마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미국 경제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다. 경제 정책 기조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나.
▽김 원장=결론적으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금융위기 대책에는 이미 민주당과 오바마의 주장이 상당 부분 반영돼 있다. 미국 정부가 부실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을 의회가 승인하는 조건으로 민주당은 금융회사의 모럴 해저드에 대한 책임과 중소기업에 대한 피해 방지책을 주장해 관철시켰다. 다만 오바마는 위기 극복을 위해 큰 정부를 지향할 것이다. 이라크 철군과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增稅) 등을 통해 마련한 세원으로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늘리고 중소기업을 지원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 그의 대선 공약이다.
▽현 교수=양국 간 현안 중 가장 중요한 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오바마 당선인은 선거 기간 중 한미 FTA에 대해 부정적으로 발언했다. 그럼에도 오바마 측 인사들은 한미 FTA가 궁극적으로 한미 관계를 발전시키고 두 나라의 이익을 증진시킨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바마 측도 한미 FTA가 미국 의회에서 비준이 안 되면 양국 관계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한미 FTA는 경제 문제이기도 하지만 외교 문제이기도 하다. 새 정권이 출범하면 한미동맹에 대한 중요성을 고려해 외교적 감각으로 이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 원장=오바마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다. 한미 FTA는 양국에 균등하게 이익이 되도록 협상이 이뤄졌다. 우리 정부가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한다면 미국 정부와 의회를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특히 우리 국회가 먼저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재협상을 하자고 요구할 수도 있다. 양국 국민에게 동의를 받지 못했다면 모든 가능성을 열고 재논의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현 교수=북핵 문제와 관련해 오바마는 지난 8년간의 대북 외교를 재검토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2가지 점을 미국에 주지시켜야 한다. 첫째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궁극적인 정책 목표라는 것이다. 이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방법론적 유연성은 가능하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 정책도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한다. 그 원칙하에서 유연하게 접근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사전 협의와 한미 공조다. 충분한 협의를 바탕으로 한미가 북핵 문제에 공동보조를 취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핵을 포함한 북한 문제 해결 과정에 한국의 역할이 없으면 안 된다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
▽김 원장=북-미 대화를 놓고 우리 정부가 조급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미국은 북한에서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를 없애는 것이 목표인데 이는 한반도 평화 공존 인프라의 가장 중요한 선결조건이다. 북-미 간 협상 결과로 우리가 경제적 부담을 져야 한다면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얻어내야 할 것이다.
▽현 교수=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보수 정부의 진보적 접근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2기 부시 행정부의 초반 2년은 아주 보수적이었지만 후반 2년은 빌 클린턴 행정부보다 더 진보적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뤄질 것이다. 기존 6자회담의 틀을 깨기도 어려울 것이고, 북한 내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이명박 정부와 기조가 같은 부분이 있다. 다만 오바마 캠프의 일부 인사들이 대북 문제와 관련해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하지만 막상 정부가 출범하면 상당히 현실적으로 바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우려할 필요는 많지 않다. 다만 한미 정상이나 고위 관료 수준에서 양국 간에 아주 긴밀한 대화와 협력이 전제돼야 한다.
▽김 원장=오바마는 실용주의자다. 대선 기간 중 ‘좌파주의자’라는 공격을 받았을 때도 “나는 이념에 사로잡힌 후보가 아니다. 일자리를 만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것뿐”이라고 답했다. 그는 ‘어렵게 살지만 성공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개인, 자유민주주의를 믿고 기회를 찾는 사람이 성공하는 미국의 이상’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필요하면 진보나 보수의 이념적 구분 없이 정책을 쓰고 사람도 등용할 것이다.
▽현 교수=미국의 세계관에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런 큰 틀에 기초해 동아시아와 한반도 정책에 관한 새로운 구상이 나올 것이다. 한국도 새 정부 출범 이후 대외정책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틀을 마련해 놨다. 그 중심에는 한미 동맹이라는 중요한 토대가 있다. 한미 양측이 이 같은 토대를 기초로 서로 접근하면 어떤 ‘공동의 장’이 발견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보수 정부이고 미국 정부는 진보 정부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분법적 논리일 뿐이다. 한미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동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한 한미 관계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김 원장=오바마는 동맹이다, 적이다 이런 것보다는 굉장히 실용적으로 국제질서를 만들어 갈 것이다. 오바마는 많은 국가들이 스스로 책임을 갖고 국제사회에서 협력하는 것을 지향할 것이다. 한국도 그런 다원주의 속에서 할 일이 무엇이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걸 통해 미국 정부와 대화하고 협조해 나간다면 성숙된 한미 관계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 현인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국제정치학 박사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원장 △대통령자문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LG전자 사업담당 부사장 △LG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 상무 △LG투자증권 상무
정리=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