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저유가 악몽’

  • 입력 2008년 10월 31일 02시 57분


1986년 배럴당 11달러… 10년 넘게 침체

“오일 달러 2년내 바닥” 위기 재연 우려

중동 산유국들이 ‘1986년의 악몽’이 되살아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당시 유가가 폭락하면서 중동 국가들은 긴 경기침체와 사회적 불안을 겪었다. 이런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산유국들은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1986년 유가 폭락의 교훈=1979년 2차 석유파동 이후 배럴당 30달러 선을 유지하던 국제유가는 1986년 7월에는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의 월평균 가격이 11.58달러까지 떨어졌다. 이후 걸프전이 일어난 1990년을 제외하고는 2000년대 초반까지 저유가 기조가 유지됐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최근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에서 “당시나 지금이나 서방 국가들의 경기침체가 유가 급락의 원인이었다”며 “이후 중동 산유국들은 긴 경기침체를 겪었고 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 수위가 크게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83년부터 12년 연속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1983∼87년 아랍에미리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2%, 사우디는 20%, 이란은 17% 감소했다.

최근 유가가 급락하면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이 하루 150만 배럴 감산에 합의한 것도 이런 역사적 경험을 통해 배운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유가 하락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시사주간 타임 최신호는 “미국인들은 이제 자동차를 덜 몰고 있다”며 “중국 등 신흥국가들의 석유 수요가 감소한 것 역시 유가 하락을 부채질할 것”으로 전망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유가가 떨어지면 산유국들은 수입을 메우기 위해 오히려 생산량을 늘렸다”며 감산 합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산유국 씀씀이 커져 부담 가중=이란과 쿠웨이트,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최근 몇 년 동안 대형 건설사업 등에 자금을 쏟아 부었고 재정 지출은 예년보다 15∼20% 늘어났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중동 산유국들이 고유가 기간에 벌어들인 오일달러는 2년 안에 바닥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에너지 컨설팅회사인 NGP에너지캐피털매니지먼트의 아나스 알하지 선임연구원은 CNN 인터뷰에서 “중동 산유국들은 고유가를 가정하고 대형 건설사업을 벌여 왔다”며 “이제는 재정 부족으로 사업을 마무리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사우디와 이란은 청년실업률이 25%를 넘는 등 취업난이 심각한데 재정 지출마저 줄어들면 청년실업률이 더욱 악화돼 사회 불안이 가중될 것으로 브루킹스연구소는 내다봤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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