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 주식회사’의 문어발 확장

  • 입력 2008년 10월 23일 02시 59분


러, 금융위기에 기간산업 再국유화 등 ‘국가통제 자본주의’ 강화

러시아 정부가 금융위기 해소용 자금을 크렘린의 기업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실탄으로 사용하고 있다.

21일 부도 위기에 몰린 대형 건설업체 시스테마할스는 국영 대외무역은행(VTB)에 구제금융 7억 달러를 요청했다고 모스크바타임스가 보도했다. 이 회사의 모기업 시스테마그룹은 1995년 옛 소련의 통신망을 헐값에 사들여 자본을 축적한 뒤 건설업에 뛰어든 민간기업.

시스테마할스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외국인 투자가들이 러시아 주식시장을 빠져나가자 자금조달 창구를 잃었다. 더욱이 러시아 중소은행들은 제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부동산 개발자금 대출을 거절하거나 연간 25%의 대출 금리를 요구했다.

최근 두 달간 주가가 3분의 1로 떨어진 이 회사는 결국 구제금융 7억 달러를 받는 대신 회사 주식 50%를 크렘린의 통제를 받는 VTB에 넘기기로 했다.

지금까지 에너지기업의 재(再)국유화에 열중하던 크렘린은 이 같은 민간 건설회사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재국유화 바람은 철강, 비철금속, 중공업 등 러시아 기간산업뿐만 아니라 통신, 의약, 건설, 슈퍼마켓 체인점까지 확대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이번 주부터 유동성 해소자금 2000억 달러를 은행권에 풀고 있다. 러시아 일간 네자비시마야가제타는 러시아 은행 1126개 가운데 100여 개만 살아남고 나머지 90% 이상이 파산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망했다.

살아남은 우량은행들은 자금 수혈을 받는 대신 시스테마할스와 같은 방식으로 지분을 정부에 매각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계획이라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이럴 경우 러시아 정부는 전체 기업 수의 70%를 지배하는 최대 주주로 부상하고 크렘린은 대다수 기업의 자금과 산업 활동까지 통제하는 사령탑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언론들은 러시아가 사회주의 체제로 돌아가진 않겠지만 ‘국가통제형 자본주의’를 구축할 것이 유력하다고 전했다. 정치평론가 드미트리 셰르빈 씨는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러시아에서 크렘린의 기업 통제가 확대되면서 주변 국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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