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시험대 오른 부시 외교

  • 입력 2008년 8월 13일 03시 07분


‘흔들리는 동유럽 민주 교두보’ 구두경고뿐 제재수단 없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1일에야 ‘그루지야 사태’와 관련해 입을 열었다. 러시아 군의 그루지야 진격 4일 만의 일.

베이징 올림픽에서 돌아온 부시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주권국가인 이웃나라를 침공해 국민이 선출한 민주정부를 전복하려는 러시아의 행동은 21세기에 용납될 수 없다”며 군사행동 중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러시아가 미국의 경고를 어길 경우 어떤 행동을 취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담지는 못했다.

러시아 전문가인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다급하게 전화통을 붙잡고 수십 통의 비상전화를 걸었지만 사태 악화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AP통신은 이날 “부시 대통령의 ‘뒤늦은’ 구두경고는 그루지야 사태를 보는 미국 외교정책의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미국은 이번 사태를 해결할 충분한 지렛대를 갖추지 못했고 중재능력도 결여한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옛 소련연방 해체 이후 독립한 그루지야는 부시 대통령 출범 이후 미국이 추구해 온 자유민주주의 확산의 동유럽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미국은 2003년 이후 그루지야 군대의 현대화 및 치안유지를 위해 매년 3000만∼6400만 달러를 제공해 왔다.

또한 부시 대통령은 자신이 시작한 개발도상국 빈곤퇴치 프로그램인 ‘밀레니엄 챌린지’ 계획을 통해 2억9500만 달러를 원조하는 한편 그루지야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전폭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이나 이란의 핵개발 등 산적한 현안 해결에 러시아의 도움이 절실한 미국으로서는 이번 사태에 즉각적으로 개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러시아로서도 11월 대선까지 불과 90여 일을 앞둔 레임덕 대통령인 부시 대통령이 미국 국민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한 그루지야 사태에 대해 정치 군사적 충돌을 불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네오콘(신보수주의)의 사상적 지주로 알려진 리처드 펄 전 미 국방정책자문위원장은 “이번 사태는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 당시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비견된다”며 “크렘린에 대한 지나친 믿음이 뒤통수를 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위기를 끝내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안보리는 폭력사태의 즉각 종식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 후보는 “나토는 휴전을 요구하는 한편 남오세티야에 평화유지군을 배치하고 향후 나토와 러시아 관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긴급회의를 소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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