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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30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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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치평론가들은 8월이 다가오면서 이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러시아 현대사에서 8월은 갓 취임한 지도자에게 시련을 안겨준 달이었기 때문이다.
1986년 8월 러시아 신문과 방송들은 소련 역사상 처음으로 교통사고에 관한 뉴스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해 여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글라스노스트(개방) 운동으로 언론 자유의 물꼬를 터주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다음 해인 1987년 8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에서 일어난 반소(反蘇) 시위로 글라스노스트의 역풍을 맞았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91년 8월 19일 소련 라디오 방송은 “고르바초프가 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강경파가 고르바초프를 크림 휴양지에 연금시키고 쿠데타를 일으킨 것. 이후 소련은 15개 독립국가로 쪼개지고 고르바초프는 실권했다.
쿠데타 당시 탱크 위에 올라가 지도자로 급부상한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도 1992년 8월 대규모 사유화 정책을 핵심으로 하는 급진적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발표한 뒤 지지 기반을 잃어갔다.
2000년 8월 블라디미르 푸틴(현 총리) 전 대통령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가 침몰하자 언론을 통제한 탓에 집권 내내 서방으로부터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 독재자’라는 말을 들었다.
8월은 휴가 시즌이다. 크렘린과 의회도 잠시 문을 닫고 휴가를 떠나는 시기다. 그런 시기에 옛 소련 인민과 러시아 국민은 자유를 향한 갈망을 분출했다.
1991년 쿠데타 당시 시인 예브게니 옙투셴코는 러시아 국민의 감정을 이렇게 대변했다.
“8월은 노래와 발라드로 칭송되리라. 우리는 놀림을 받는 행복한 바보가 아닌, 국민이다.”
올해 5월 취임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사진) 대통령. 집권 초반부터 정치적인 기반이 취약하다는 평을 받아 왔다.
그가 8월의 시험대를 어떻게 통과할지 많은 이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는 러시아 대표팀을 격려하면서 8월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 자신도 휴가 시즌에 갑자기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을 곱씹으며 경계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