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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15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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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모기지 규모의 절반 차지… 부실화 비상
美정부 개입해 급한불 껐지만 근본 처방 못돼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한국에는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미국의 두 회사가 글로벌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두 회사의 자금위기설 및 정부 인수설이 퍼지면서 미국 증시가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곧바로 미 재무부가 일요일(13일) 밤 긴급 구제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타전됐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미국의 양대 모기지 업체로 전체 모기지 규모의 절반에 가까운 5조 달러를 보유 혹은 보증하고 있다. 둘 중 한 곳이라도 파산하면 지난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재연되면서 침체된 세계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 변종 공룡기업
전문가들은 이 ‘빅2’ 업체의 위험성이 이미 독특한 탄생 과정에 내재돼 있었다고 지적한다.
패니메이는 대공황 시기 경제부흥책인 뉴딜정책 과정에서 1938년 미 의회가 창설한 금융기관이다. 저소득층이나 중산층이 주택을 보유하고 이를 통해 가계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후 프레디맥도 1970년 비슷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들은 은행에서 소액의 모기지 채권을 대거 사들인 뒤 이를 엮어 하나의 금융상품으로 만들어 헤지펀드나 다른 투자자에게 되판다. 이런 자산 유동화 과정에서 대출자들이 빌린 돈을 갚지 못할 경우 두 회사가 대신 갚아주는 보증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이 두 회사는 주주가 있는 사기업이면서도 정부가 보증하는 일종의 변종(hybrid) 업체. 이런 준(準)공기업 성격 덕분에 미 재무부에서 각각 22억5000만 달러의 자금을 끌어다 쓸 수 있고 연방 및 주 정부로부터 각종 면세와 규제완화 혜택을 받는다.
이런 특혜를 바탕으로 최고 수준의 기업 신용평가 등급을 유지하면서 은행에서 쉽게 돈을 빌려 써 왔다. 최저 대출금리와 높은 수익 간의 차이로 얻은 마진 수익은 다시 고위험, 고수익의 모기지 채권 투자로 이어졌다.
빠르게 몸집을 불리는 두 기업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다. CNN머니에 따르면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2004년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급격한 성장이 금융시장을 위협하고 있는 만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들이 모기지 시장에서 갖는 영향력과 달콤한 고수익, 정부의 지원에 익숙한 시장 관계자들은 이런 경고에 신경 쓰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13일 “월가의 금융회사와 부동산업자들은 물론 정치권도 공동의 이해관계에 얽혀 모두 입을 다물었다”고 지적했다.
○ 한숨은 돌렸지만…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사들인 모기지 채권 보증에 실패하면 향후 모기지 금리가 크게 오르고 사실상 추가 대출의 길이 막히면서 가뜩이나 침체된 부동산 경기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
두 회사는 이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가 발생한 지난해 7월 이후 무려 127억 달러의 손해를 본 상태다. 주가도 급락해 패니메이는 지난 한 주 동안에만 32%, 프레디맥은 47%나 떨어졌다.
문제는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많지 않다는 것. 경기침체 속에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올해 상반기에만 집을 잃은 미국인이 34만3400명에 이른다. 차압주택 전문회사인 리얼티택에 따르면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6% 늘어난 수치다.
월가를 떠도는 ‘제2의 신용위기’가 현실화되면 미국은 물론 중국 인도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분석했다.
미 재무부가 프레디맥의 30억 달러 채권 매각을 하루 앞둔 13일 저녁 긴급 지원책을 발표한 것도 이런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전폭적인 지원 방안으로 일단 자금의 숨통은 트인 셈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조치로 “특정 기업 주주들의 손실을 세금으로 보전해 준다”는 비판에 또다시 직면하게 됐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지만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