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 미국의 주인공으로 급부상

  • 입력 2008년 7월 5일 03시 04분


美외교 ‘국익 강조’ 성향 더 강해질듯

백악관문턱에 간 오바마… 미디어그룹 ‘NBC 유니버설’ CEO… 줄이은 3040 주지사

"요즘 수강생들은 베이비붐 세대에 비해 확실히 실용주의적이고 덜 이념 지향적입니다. 커리어에 도움이 될 정보에 골몰하고 국제문제도 국익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박윤식 교수는 워싱턴 근교 알링턴의 외교관 교육기관인 포린서비스 인스티튜트(FSI)와 은행감독관 교육기관인 연방재정기관감독위원회(FFIEC)에서 20년 가까이 국제금융 등을 가르쳐왔다. 수강생은 초중급 외교관과 금융감독 담당 관리들.

그동안 세대가 바뀌면서 강의실 안팎 분위기가 눈에 띄게 변했다고 박 교수는 말한다. 베이비붐 세대를 가르치던 시절엔 글로벌 이슈를 놓고 이념의 관점에서 토론이 자주 벌어졌다. 엘리트 공무원들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외교노선, 사회체제에 대해 리버럴한 시각에서 비판하는 젊은 공무원도 많았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출생자가 대부분인 요즘 수강생들은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이슈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에 목말라 한다.

미국을 움직이는 세대가 바뀌기 시작하고 있다.

20여 년간 베이비붐 세대가 석권했던 미국의 파워엘리트 그룹에 이른바 'X세대(1960년대 초반~1970년대 중후반 출생)'라 불리는 30, 40대의 진입이 본격화하고 있다.

성장 과정과 이념 성향에서 이전 세대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이들이 각 분야의 조타수가 되면 '미국호(號)'의 항로에도 적잖은 변화가 올 것으로 전망된다.

▽약진하는 X세대=민주당 대선 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1961년생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끝자락인 동시에 X세대의 선발 주자다.

주지사 중에도 X세대가 많다. 공화당 부통령후보 물망에 오른 바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와 사라 팔린(여) 알래스카 주지사는 각각 1971년, 1964년생이다. 이 밖에 메릴랜드의 마틴 오말리(1963년생), 미네소타의 팀 폴랜티(1960년생), 유타의 존 헌스만(1960년생), 미주리의 매트 블런트(1970년생) 등 30, 40대 주지사 그룹이 커지고 있다.

행정부에서도 X세대의 약진이 눈에 띈다.

올해 41세인 존 루드 국무부 군축·군제안보 담당 차관은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상원의원 참모,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등을 거쳐 지난해 9월 차관이 됐다. 법무부 민권담당 차관보인 한인 2세 그레이스 정 베커(여) 차관보는 39세다.

민간 부문도 마찬가지다. 연간 매출액 160억 달러의 거대 미디어그룹인 NBC유니버설의 제프 주커 최고경영자(CEO)는 현장 PD를 거쳐 지난해 42세에 최고경영자가 됐다.

인터넷 분야에선 X세대가 최상층부를 차지한 지 오래다. 야후의 창립자인 제리 양은 1968년생이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 창업자인 차드 헐리(1977년생), 스티브 첸(1978년생) 등 X세대 끝자락의 20대 후반~30대 초반도 약진하고 있다.

▽탈(脫)이념적 성향의 '낀 세대'='X, 세상을 구하다'(제프 고디니어 저·2008년)를 비롯한 세대 문화 연구서와 사회학자들의 공통된 분석은 "X세대는 탈이념적이며 실용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세대"라는 것이다.

이들은 부모 세대가 구조조정의 광풍에 희생되는 모습을 목격하며 컸다. 과거 세대처럼 사다리 형태로 상승하는 커리어를 밟지 못하고 격자(格子) 형태로 수평 이동과 상승·하강이 교차하는 불안정한 궤도의 커리어를 쌓아왔다.

버지니아 주의 정보통신회사에 다니는 데이비드 길버트(39) 씨는 "고교 시절 자동차부품회사에 다니던 아버지가 구조조정을 당해 어려움을 겪었다"며 "회사 자체에 대한 충성보다는 일 자체에 충성을 바치는 심정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오바마 후보의 탄탄한 지지층인 이들은 다(多)문화, 다인종적 환경에 거부감이 별로 없다. 직장 내 인간관계 연구가인 다이앤 시엘폴드트 씨는 자신의 '러닝카페'에 올린 글에서 "X세대는 탄력적이며 적응력, 독립성이 강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을 베이비붐 세대와 뚜렷이 구분지어 주는 특징은 탈정치적, 탈이념적 성향이다.

오클라호마대 역사학자인 스티브 길론 박사는 저서 '부머 네이션'에서 "베이비붐 세대는 세대 전체가 하나의 관점을 통해 사회를 바라봤던 마지막 세대"라며 그 뒤엔 그런 공통의 사회 이슈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성장기와 청년기에 베트남전쟁 반대, 민권운동에 참여하고 히피문화로 상징되는 반(反)제도권 정서를 유전자(DNA) 깊숙이 각인했다. 세상을 이념의 패러다임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X세대는 공동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결집하는 대신, 자기 영역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분위기에서 자랐다. 하나의 이슈로 전체를 끌어 모으는 구심력보다는 다양한 각 분야에서 전문성이 존중받는 원심력의 세대인 것이다.

▽'X세대'가 이끌 미국의 항로=오바마 후보는 성장 과정을 볼 때 전형적인 X세대 주류 엘리트라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뚜렷한 세대 대결 양상을 보인 경선 과정에서 드러났듯 X세대 이하의 정치적 목소리는 그의 당락과 관계없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

관계와 대학, 언론의 분위기도 바뀔 것으로 보인다.

버클리캘리포니아대의 한 교수는 "미국 교수사회는 그동안 '리버럴의 성역'이라 할 정도로 진보 색채가 강했고 그 중심엔 베이비붐 세대 교수들이 있었다"며 "하지만 요즘 테뉴어(안정적 신분 보장, 종신재직권)를 받으려 애쓰는 젊은 교수들은 실용적인 것을 중시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개인주의적이고 실리적인 것을 강조하는 X세대의 특성상 지구촌 과제에 대한 미국의 역할과 책임에 소극적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의회 관계자는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논리에 가장 강력히 저항한 건 50대의 베이비붐 세대였다"며 "X세대는 이라크전쟁뿐만 아니라 환경문제, 전쟁범죄 등의 글로벌 이슈에 대해서도 목소리가 약했다"고 진단했다.

최근 오바마 후보가 이념적으로 다소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서도 "이념적으로 뚜렷한 뿌리가 없는 세대적 특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972년 대선 때 좌파 성향의 조지 맥거번 상원의원에 열광하며 선거운동에 가담했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등 베이비붐 세대가 여전히 이념적으로 선명한 행보를 보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런 점에서 X세대가 주도하는 미국의 외교는 명분에 집착한 개입이 줄어들고 국익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성향이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박윤식 교수는 "한국의 386세대는 미국의 동년배보다는 베이비붐 세대와 유사점이 더 많은 것 같다"며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실리와 국익에 민감하고 이념보다 전문성을 강조하는 세대가 지휘탑에 올라서는 추세임을 유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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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세대: 1960년대 초중반~70년대 중후반 사이에 태어난 세대. 1965~1979년 출생자를 기준으로 집계하면 4800여 만 명에 달한다. 앞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와 뒤 세대인 Y세대에 비해 인구 규모로는 60% 안팎에 불과하다. X세대란 표현은 자기 속으로 침잠하는 20대 젊은이들을 다룬 캐나다 작가 더글래스 쿠플랜드의 1991년 작 소설의 제목에서 유래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하태원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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