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부통령 자리’로 눈 돌리나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6월 5일 03시 09분



■ 마지막 연설… 향후 진로는

자부심과 미련, 뜨거운 격려와 아쉬운 한숨이 뒤섞인 자리였다.

미국 민주당 경선이 끝난 3일 뉴욕 바루크대 체육관.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야심 찬 포부가 꺾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마지막 연설이 지지자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진행됐다.

힐러리 의원은 “많은 사람이 5개월 전 (경선이 시작된) 아이오와 주에서 이미 경선이 끝났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서로를 믿고 여기까지 왔다”며 “여러분의 스토리와 꿈을 내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함께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뉴햄프셔, 웨스트버지니아, 켄터키 주 등 자신이 승리한 지역을 일일이 거명하며 “나를 선택해 준 1800만 명의 유권자에게 감사한다”고 인사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승리가 확정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 대한 언급도 없이 “긴 여정을 계속해온 만큼 오늘밤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겠다”고 했을 뿐이다. 또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지는 여러분이 홈페이지나 e메일로 보내주는 의견에 달렸다”며 향후 거취 결정에 대한 고민을 지지자들에게 넘겼다.

선거전이 시작된 16개월 전까지만 해도 유력한 후보였던 자신이 흑인 정치 신인에게 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가 역력했다. 지지자들도 “덴버, 덴버”를 연달아 외치며 그에게 8월 덴버에서 열리는 전당대회까지 승부를 끌고 가라고 격려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힐러리 의원의 심경을 “과거 자신의 승리에 대한 향수와 최종 결과에 대한 저항심”이라고 표현했다.

미국 정치권과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은 그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쏠린다.

힐러리 의원의 지지자들은 부통령 후보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민주당 주요 인사들 역시 오바마-힐러리 진용이 백악관 입성에 절대 실패할 수 없는 ‘꿈의 티켓’이라고 보고 있다. 오바마 후보가 열세인 백인 노동자층과 여성들의 표를 힐러리 의원이 한꺼번에 끌어올 수 있다는 것.

힐러리 의원도 최근 “민주당이 백악관에 입성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할 것”이라며 “오바마 의원이 원한다면 부통령 자리도 수락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고 동료 의원들이 전했다. 래니 데이비스 전 백악관 법률보좌관은 AP통신에 “부통령으로 힐러리를 선택하도록 오바마 캠프에 청원할 것”이라며 지도부 인사들이 압력을 행사할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오바마 후보가 자기주장이 강한 힐러리 의원과 섣불리 손을 잡았다가는 당 내분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경선 과정에서 서로를 공격해온 양 진영의 화합 문제도 남아 있다.

하킴 제프리 뉴욕 주 의원은 “힐러리보다 남편인 빌 클린턴이 백악관 주변을 어슬렁거리게 될 것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성차별의 벽? 전략 실패의 흠?▼

“힐러리 패인은 소통능력 부족” 분석도

‘흑인’과 ‘여성’의 대결로 치러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흑인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리면서 이 같은 결과를 낳은 요인에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에서 막강한 지분을 가진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사실상 정치 신인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게 맥없이 무너진 점에 미루어 미국 정치권에선 ‘성차별’이 ‘인종차별’보다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직 미국인들은 여성 국정 최고책임자를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CNN의 4월 여론조사에도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응답이 76%였던 데 비해 여성 대통령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응답은 63%에 그쳤다. 이를 반영하듯 경선과정에서 많은 백인이 흑인 후보인 오바마 후보에게 열광했고 그를 지지했다.

이에 앞서 당내 경선 초기의 전략적인 실수가 힐러리 후보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내 손꼽히는 선거전략가인 프랭크 러츠 씨는 “많은 미국인이 변화를 원하는 시점이었는데도 힐러리 후보는 경륜을 강조하는 실수를 했다”며 “반면 오바마 후보는 ‘변화’라는 말을 중요 선거 구호로 사용하며 탁월한 선거전을 펼쳤다”고 말했다.

힐러리 후보가 대의원이 많은 큰 주(州)의 프라이머리(예비경선)에 집중한 나머지 대의원이 많지 않은 주를 소홀히 한 점도 패인으로 거론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오바마 후보는 미국 모든 지역에서 차근차근 대의원 수를 늘려가면서 ‘오바마 대세론’을 확산시켰다.

유권자들과의 소통 능력에서도 오바마 후보가 힐러리 후보를 앞섰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오바마 후보는 유세현장에서 탁월한 대중연설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연설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았다. 이 같은 ‘교감능력’은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층을 민주당 경선투표장으로 끌어들였다.

반면 ‘똑똑한’ 힐러리 후보는 중요한 정책에 대해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고 후보 토론회에서도 토론을 잘했지만 결정적인 유권자들과의 ‘교감’에 성공하지 못했다. 탁월한 연설가였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달리 힐러리 후보의 연설은 딱딱했고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이 부족했다는 평이 많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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