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가치 高 유럽 기업 苦

  • 입력 2008년 4월 29일 03시 00분


《‘독일의 자동차와 프랑스의 샴페인, 이탈리아의 핸드백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점점 비싼 상품이 돼 가고 있다.’(24일 AP통신) 유럽 기업들이 요즘 환율 때문에 울상이다.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로 달러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면서 유로화 가치가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강한 유로가 글로벌 시장에서 유럽 상품의 가격인상으로 이어져 수출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비싸지는 유로=달러화 대비 유로화의 가치는 지난해 초보다 20% 가까이 올랐다. 22일에는 유로에 대한 달러 환율이 1유로에 1.6018달러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월 말 1.50달러를 돌파한 뒤 2개월도 되지 않아 1.60달러를 넘어선 것.

가파른 상승곡선은 이후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독일, 프랑스의 기업체감지수가 하락했다는 소식과 함께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5개 유럽국가) 경제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확산되면서 유로 환율은 25일 1.5623달러로 내려갔다.

여기엔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유로 강세로 경제 안정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30일 발표할 예정인 금리 인하의 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달러에 힘을 실어줬다.

네덜란드 라보은행의 제러미 스트레치 시장전략가는 블룸버그통신에 “유로존의 경제 성장 동력이 꺾인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며 “환율의 숨고르기로 유로당 1.44달러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유로 강세 기조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로이터통신은 금융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미국의 경제지표가 크게 개선되거나 FRB가 향후 경제상황에 대한 강한 신뢰감을 보여주지 않는 한 유로는 1.55달러 이상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금리 인하 조치를 통해 통화량을 늘리는 것이 환율 상승세를 완화시키는 한 방법이지만 ECB가 이를 단행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낮은 금리가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ECB는 기업들의 금리 인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시름에 잠긴 기업들=유럽 최대 경제단체인 ‘비즈니스유럽’은 24일 “유로 강세가 걱정스러운 수준(alarming)에 이르렀다”며 “이는 (미국 이외의) 다른 지역 수출로 상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럽경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필리프 드 벅 비즈니스유럽 사무총장은 “유럽 기업들이 감당할 수 있는 환율 마지노선인 유로당 1.40달러를 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특히 비용은 유로로 계산되고 판매는 달러로 이뤄지는 중장비 업체와 화학 분야의 타격이 크다고 그는 설명했다.

신흥시장인 중국과 브라질, 인도, 러시아로의 수출은 늘고 있지만 이들 4개국의 가계 소비를 다 합쳐도 유럽연합(EU)의 최대 단일시장인 미국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기업들로선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다. 자동차업체 폴크스바겐의 마르틴 윈터코른 최고경영자(CEO)는 24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유로 강세 때문에 기업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반도체업체인 인피니온도 23일 “유로 강세가 꺾이지 않는다면 올해와 내년의 수익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유로당 1.6달러 수준의 환율이 내년까지 계속될 경우 인피니온은 1억2000만 유로의 손실을 보게 된다.

프랑스의 호텔 운영업체인 아코르그룹 역시 지난주 유로 강세로 1분기 실적이 악화됐다고 발표했다.

항공회사 에어버스는 22일 유로 강세와 원자재 값 상승 때문에 1만 명의 감원과 일부 생산시설 매각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달러 약세로 수출 탄력을 받은 미국 보잉사와 경쟁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물론 기업들도 환율 헤지로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BMW는 지난달 “(유로 강세 전망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2004년 이후 수익 중 21억 유로가 날아가 버렸다”고 털어놨다.

한편 EU는 25일 중국과의 고위급 경제회담에서 환율 문제에 대한 대응에 나섰다. 지난해에만 1590억 유로에 달한 EU의 대중 무역적자는 최근 유로 강세 때문에 급속히 불어나고 있다.

EU는 이 자리에서 양국의 무역 불균형 문제를 거론하며 중국의 적극적인 환율정책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은 “EU의 대중 무역적자가 눈 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에서 환율 문제는 티베트 사태 못지않은 중요한 현안”이라고 전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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