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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월 2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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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때일수록 뉴스의 신뢰성과 분석력 면에서 신문에 대한 기대는 커질 것이다.
신문은 편집 과정에서 이중 삼중으로 검증하고 기명기사로 책임을 진다. 한 번에 볼 수 있는 일람성도 있다.
젊은 사람들도 나이를 먹게 되면 다시 신문으로 돌아올 것이다.》
日 ‘문자활자문화 추진기구’ 초대회장 후쿠하라 시세이도社 명예회장
일본의 세계적 화장품 브랜드 시세이도(資生堂)의 후쿠하라 요시하루(福原義春) 명예회장은 흔히 ‘문화인’으로 불린다.
취미로 하는 사진 촬영이나 난(蘭) 재배는 프로급 수준이다. 기업 메세나 활동에서도 선두를 달린다. 자서전 ‘나의 복선인생’ 등 20여 권의 저서를 냈고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매달 20∼30권의 책을 읽는다.
최근에는 재단법인 ‘문자활자문화 추진기구’의 초대 회장에 취임해 일본의 독서 인구 감소와 활자 이탈에 브레이크를 걸겠다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신년을 며칠 앞둔 지난해 말 도쿄(東京) 긴자(銀座)의 시세이도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10월 24일 문자활자문화 추진기구가 출범했다.
“준비위의 요청에 떠밀려 회장을 맡았지만 기업인으로서 평소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원들의 기획서를 보면서 개성이 없고 인터넷에서 검색한 언어를 모아 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대학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진짜 지식, 교양을 쌓으려면 독해력을 몸에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 ‘글 읽는 힘’이 없는 집단에 진보나 발전은 없다. 늦은 감이 있지만 친지의 생일에 책을 선물하는 작은 운동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이 기구는 2001년과 2005년 각각 제정된 ‘어린이 독서활동추진법’과 ‘문자활자문화 진흥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설립됐다. 일본 신문협회 기타무라 마사토(北村正任) 회장 등 신문 출판 경제 노동 의료 분야의 지식인들이 2006년부터 설립 준비에 힘을 모았다. 히다 미요코(肥田美代子) 사무국장은 아예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여기에 뛰어들었다.
―가장 중점을 두는 사업은….
“‘읽는다’는 것은 지식을 소화하는 힘을 몸에 익히는 것이다. 4월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언어력 검정시험’을 도입하고 ‘신문 깊게 읽기 강좌’ 등도 개설할 계획이다. 책과 신문을 읽는 습관은 어려서부터 들여야 한다. 전국 공립 초중고교에 5, 6가지 신문을 학습교재로 비치 중이다(신문열독정비 5개년계획). 등교 뒤 10분간 독서하기 운동은 전국 초중고교의 65%인 2만6000개교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첫 수업의 분위기가 차분해졌고 등교 거부 학생도 줄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한국에서도 젊은 층의 신문 이탈이 두드러진다. 정보화도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한 차례 혼란을 겪은 뒤 매체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지 않을까. 신문과 방송, 인터넷이 가진 기능은 각기 다르다. 광고도 매체마다 기대할 수 있는 효과나 소구력이 제각각이다. 인터넷 시대에는 아무나 발신하고 누구나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지만, 오히려 신뢰할 만한 정보를 분간하기 어렵게 된다. 이런 때일수록 뉴스의 신뢰성과 분석력 면에서 신문에 대한 기대는 커질 것이다. 신문은 편집 과정에서 이중 삼중으로 검증하고 기명기사로 책임을 진다. 한 번에 볼 수 있는 일람성도 있다. 젊은 사람들도 나이를 먹게 되면 다시 신문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아침 일찍 일어나 6개 신문을 훑어보고 책을 읽는다. 5, 6권을 병행해 읽는 것이 후쿠하라식 독서법. 다 읽은 책은 동네 도서관에 보낸다. 10년간 기증한 책이 2000권을 넘는다.
“독서를 거창하게 생각하면 못한다. 아무리 일에 쫓기더라도 전철 타는 동안과 같은 짬은 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사용하는 지혜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와 다큐멘터리를 좋아하지만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다. 건성으로 읽다 보면 뭔가 ‘연기가 솔솔 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 곳은 정독한다. 지식을 내 것으로 하기 위해 메모와 스크랩을 많이 한다. 내용이 좋으면 책 광고도 오려 둔다.”
젊은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묻자 대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먼의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를 든다. 고정관념을 깨는 발상법을 배울 수 있단다.
―시세이도는 창립한 지 135년 이상 된 기업이다. 전통과 혁신을 조화시켜 발전하는 비결은….
“시세이도는 ‘브랜드’를 중요한 기업가치로 본다. 품질과 서비스의 차별화만으로는 경쟁 우위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회사가 쓰러질 정도의 위기를 네 번 맞았다. 그때마다 내부에서 새로운 힘이 나와서 위기를 극복했다. 회사건 사회건 위기와 역경을 통해 강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저력은 평소 쌓아 놓은 지식의 힘에서 나온다고 본다. 경영의 리더도 마찬가지다. 사원을 의욕에 넘치게 하고 손님에게 신뢰감을 주는 한마디는 풍부한 독서에서 나온다. 기술혁신이나 성장만으로는 사원이든 손님이든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시대다. 인간이 수천 년간 쌓아 온 역사 속에서 끄집어낸 언어만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갖는다.”
―창업자의 손자이지만 취임 10년 만에 사장직을 내놓고 기업메세나 운동을 중심으로 사회활동에 뛰어들었다. 독특한 리더십론으로도 알려져 있다.
“개혁은 한 사람이 전부 하려 하면 문제가 생긴다. 성공 체험이 장애가 되기도 한다. 일본의 전후 역사처럼 말이다. 리더가 모든 걸 결정해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낡았다. 메이지(明治)유신은 강력한 리더가 아니라 수백 명의 인재가 만들었다. 그 배경에는 그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한 시대정신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퇴임 후에도 일이 끊이지 않으니 치매에 걸릴 틈이 없어 좋다(웃음).”
그는 몇 년 전 창업기념일에 전 세계에서 근무하는 사원에게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가 쓴 ‘나무 심는 사람’을 보냈다. 양치기가 황폐한 산에 매일 도토리를 100알씩 심었는데 수십 년이 지나니 그곳에 강이 생기고 사람이 모이고 마을이 이뤄지더라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문자활자문화 추진기구가 하는 운동도 처음에는 도토리를 뿌리는 것 같은 일이지만 언젠가는 나무가 자라고 숲이 될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협력을 제안했다.
“한국도 독서진흥법을 만들고 독서권장운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학업성취도 조사에서 한국 학생들의 독해력이 현저히 향상된 데는 이런 노력도 작용했다고 본다. 앞으로 ‘한일 독서 포럼’을 여는 등 양국이 협력했으면 한다. 또 우리 기구는 2010년을 ‘국민독서의 해’로 제정하는 동시에 유엔에 ‘국제 독서의 해’ 채택을 제안하려 한다. 한국과 일본이 유엔에 공동 제안하는 방식을 찾고 싶은데 동아일보가 도와줄 수 있는가.”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후쿠하라 리더십
일찍이 “문화력이 자본” 주창
정보화 사회 예견해 기업혁신
1872년 도쿄 긴자에 일본 최초의 서양식 조제약국을 연 창업주 후쿠하라 아리노부(福原有信)의 손자. 1987∼1997년 사장을 맡아 시세이도를 세계적 화장품 브랜드의 반석에 올려놓았다. 사장 취임 직전까지는 해외 사업부문에서 활약하며 시세이도의 파리 진출을 이뤄냈고 ‘문화력=자본’임을 주창하기도 했다.
사장 취임 직후 직원들에게 “우리는 익숙해진 대륙을 떠나 다른 섬으로 항해에 나선다. 해도(海圖)는 없다. 별만을 의지해 간다. 별은 바로 고객들”이란 메시지를 보냈다. 사내에 만연한 관료 체질을 개선하고 전례 답습주의, 형식주의, 파벌주의 타파에 나선 것이다.
기업은 사회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리더십에 대해서도 많은 저서를 냈다. 저서 ‘부하가 따르는 리더’에서는 앞으로 요구되는 리더의 자질로 ‘지(知)와 인간미로 조직을 이끄는 사람’, 리더가 돼서는 안 될 사람으로 ‘부하는 생각지 않고 자신의 출세만 좇는 사람’을 꼽기도 했다.
그는 정보화 사회에서 네트워크형 조직이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일찌감치 내다봤다. 사장 재직 시절 사내에서 펼친 ‘직함 대신 상(씨)으로 부르기 운동’은 위계 허물기의 대표적 사례. 당시 사내 홍보 포스터는 “전 사원은 사장을 ‘후쿠하라 상’이라고 불러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좌우명은 ‘바보가 불평이 많다’. 요즘도 매일 아침 1시간씩 전철을 타고 출근한다.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레지옹 도뇌르’훈장을 3차례 받았다.
:후쿠하라 요시하루 명예회장은:
1931년 도쿄 생
1953년 게이오대 경제학부 졸업, 시세이도 입사
1978년 시세이도 이사 외국부장
1987년 시세이도 사장
1997년 시세이도 회장, 일본 경단련(經團連) 평의원회 부의장
1999∼2003년 도쿄상공회의소 부회장
2000년 정부 세제조사위 위원, 도쿄도 사진미술관 4대 관장
2001년 기업메세나협의회 회장, 시세이도 명예회장
2003∼2007년 일본광고주협회 회장
2007년 도쿄예술문화평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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