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에비타’ 크리스티나…남편이어 아르헨 대통령 유력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상원의원(왼쪽)이 25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에서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현 대통령과 함께 나와 유권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이터 연합뉴스

28일 대통령선거를 앞둔 아르헨티나의 정가에는 ‘모나르키아(monarKia)’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의 부인이자 대선 후보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54) 상원의원이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이 유력시되는 것을 두고 경쟁 후보들이 만들어 낸 말이다.

키르치네르의 첫 이니셜 K를 이용한 이 신조어는 대통령 부부가 번갈아 가며 장기 집권함으로써 아르헨티나를 ‘K왕국’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경계심을 표현한 것이다.

▽부부 대통령 시대 개막되나=모두 14명이 출사표를 던진 이번 대선에서 군계일학은 단연 크리스티나 후보.

중도좌파 집권당인 ‘승리를 위한 전선(FV)’의 크리스티나 후보는 26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44.3%의 지지율로 2위(15.7%)인 중도좌파 시민연합(CC)의 엘리자 카리오 전 연방 하원의원을 제쳤다고 현지 언론 앙구스 라이드 글로벌모니터가 보도했다.

8월 이후 지지도에 별 차이가 없는 결과였다. 아르헨티나 현행 선거법은 대선에서 한 후보가 45% 이상 득표하거나, 40% 이상을 득표한 1위 후보가 2위 후보와 10%포인트 이상 차가 날 경우 1차 투표에서 당선을 확정짓는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도 23일 크리스티나 지지 선언을 하고 나설 정도여서 선거 자체가 당선 축하 이벤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바야흐로 부부 대통령의 시대가 열린다는 얘기다.

▽인플레이션 억제가 앞으로의 과제=크리스티나 후보의 인기는 집권 기간 매년 9%의 경제성장으로 2001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에서 벗어나게 한 남편의 업적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키르치네르 대통령의 경제 회복 실적이 그리 탄탄한 게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8.7%, 인플레율은 9.6%를 각각 기록했다고 발표했지만 조작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야당은 실제 인플레가 25%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키르치네르의 경제정책은 중장기 성장을 희생하고 단기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다음 대통령이 대가를 치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차기 ‘에비타’를 맞이할 아르헨티나가 눈물을 흘리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페론주의자인 이 부부가 포퓰리즘의 유혹을 떨쳐 내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7월 이상한파로 전력 부족 사태를 겪자 아르헨티나 정부는 공장보다 일반 가정에 에너지를 우선 공급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썼다. 결국 공장 5000여 개가 정상 가동되지 못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 크리스티나는 누구

‘새로운 에비타’ ‘남미의 힐러리’ ‘이멜다’ ‘보톡스의 여왕’….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후보에겐 따라다니는 호칭이 많다. 그만큼 화제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뜻한다.

아르헨티나 국립 라플라타대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다 1989년 지방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열정적 웅변과 친화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아 상원의원에 진출했다. 학력 위조 시비도 있었지만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그가 정치적 지평을 확장한 계기는 ‘부인들의 결투’로 불린 2005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상원의원 선거. 현직 대통령의 아내로 출마한 그는 46%의 지지를 얻어 에두아르도 두알데 전 대통령의 부인인 힐다 곤잘레스를 눌렀다.

그는 아직도 결혼 전 성인 페르난데스를 사용할 정도로 여성 인권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8월 14일 한 연설회에선 지지자들에게 “나는 프레지덴테(presidente·대통령)가 아닌 프레지덴타(presidenta·여성대통령)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튀는 행동에 대해선 비판도 만만치 않다. 특히 대통령궁에 자신의 상원의원 사무실을 설치한 것을 두고 거센 비난이 일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