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소비세 안올리면 재정 못버텨”

  • 입력 2007년 10월 26일 03시 13분


코멘트
이시 히로미쓰 방송대 총장이 일본 경제 정책의 최대 현안인 소비세 인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시 총장은 2000년부터 7년 동안 일본 정부 세제조사회장을 지냈다. 지바=천광암  특파원
이시 히로미쓰 방송대 총장이 일본 경제 정책의 최대 현안인 소비세 인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시 총장은 2000년부터 7년 동안 일본 정부 세제조사회장을 지냈다. 지바=천광암 특파원
정치가들은 ‘화로 속의 밤’ 주울 용기없어 도망만 다녀

7년간 日세제조사회장 지낸 이시 히로미쓰 방송대 총장

《일본에서 세금 제도 개편의 큰 틀을 짜는 정부 세제조사회장은 요직이지만 ‘위험한’ 자리로 통한다. 때로는 막강한 재무 관료들과 정면으로 맞서야 하고, 납세자들의 원망도 온몸으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2006년 말 정부 세제조사회장으로 임명된 혼마 마사아키(本間正明) 오사카(大阪)대 교수는 주간지의 스캔들 보도로 취임 45일 만에 낙마했다. 그는 3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호랑이 꼬리를 밟으면서도(재무 관료들의 비위를 건드리면서도)” 자신이 놓인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며 안이했던 처신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의 전임자인 이시 히로미쓰(石弘光·70) 방송대 총장은 소비세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해 대다수 일본 국민을 ‘적’으로 돌렸다. 주간지들은 그의 비리를 캐기 위해 벌떼처럼 덤벼들었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그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7년간 세제조사 회장을 지냈다. 지바(千葉) 현에 있는 방송대를 찾아가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 취임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소비세 인상 문제에 대해 들어 봤다.》

세제조사회장으로 일하는 동안 무보수를 고집한 이유부터 물어보았다.

“세제조사회장에게 나오는 거마비(교통비)나 차량 등은 모두 세금이다. 세금을 쓰면서 증세론(增稅論)을 주장하면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보수를 받았더라면 주간지들의 표적 취재를 견뎌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인기 없는 증세론을 왜 앞장서 주장했나.

“일본 정부의 부채는 지방 정부를 합해 800조 엔에 이른다. 국내총생산(GDP)의 1.6배나 된다. 이런 가운데 급속도로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연금과 의료 등 사회보장제도가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치가들은 도망만 다닌다. ‘화로 속의 밤’을 주우려는 (용기 있는) 정치가가 없다.”

―일본의 재정적자가 악화된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경기가 악화되면 경기를 부양한다며 재정지출을 마구 늘렸다. 균형을 맞추려면 호경기에는 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기가 없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빚이 쌓여 이제 국민에게 청구서가 돌아오는 중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는 공공사업 예산을 삭감하는 정책을 폈는데….

“올해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한 원인 중 하나다. 공공사업에는 많은 국민의 기득권이 걸려 있다. 공공사업의 혜택이 줄어들자 지방에서 여당표가 안 나온 것이다. 나는 이를 ‘정치의 빈곤’이라고 본다. 그러나 불필요한 공공사업을 줄인 것은 올바른 선택이다. 과거로 되돌아가려 해서는 안 된다. 지방은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여러 세금 중 특히 소비세를 올려야 하는 이유는….

“우선 법인세는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각국이 인하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올릴 수 없다. 오히려 내려야 한다. 소득세를 올리면 직업을 갖고 있는 젊은 세대에 부담이 집중된다. 소비세는 모든 세대가 공평하게 부담을 나눠 가질 수 있다.”

―일본에서 소비세 인상을 추진하거나 단행한 정치인들은 끝이 좋지 않았다.

“국민이 화를 낸 이유는 정치인들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는 노력을 하지 않았거나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단지 세금을 올리자고 해서가 아니다.”

―후쿠다 총리는 소비세를 인상할 것으로 보는가.

“소비세 인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재정이 버텨 낼 수 없다.”

―일부 경제학자는 ‘일본은 개인 금융자산이 많아서 정부 부채가 많아도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각 개인이 금융자산이 많다고 해도 다 세금으로 내는 것이 아니다. 개인 금융자산이 많다는 것은 정부가 국채를 발행할 때 사 줄 여력이 있다는 정도의 의미뿐이다.”

―한국도 국가 부채가 늘어나는 추세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더구나 한국은 일본처럼 금융자산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한국도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므로 재정이 악화될 요인을 안고 있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장기적인 안목에서 계획을 짜야 한다. 특히 정치인들은 ‘세금은 안 올리고, 정부 지출은 늘린다’는 식의 모순된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국민도 정치인이 이런 감언이설을 늘어놔도 현혹되지 않을 만큼의 안목을 키워야 한다.”

지바=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이시 히로미쓰 방송대 총장은

△1937년 일본 도쿄 출생

△1970년 히토쓰바시대 조교수

△1977년 히토쓰바시대 경제학 박사, 동대학 교수

△1983년 산토리학예상 수상(저서 ‘재정개혁의 논리’)

△1998∼2004년 히토쓰바시대 총장

△2000∼2006년 정부 세제조사회장

△2007년∼ 방송대 총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