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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0월 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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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미얀마는 군부의 나라로 변했다. 모든 재원은 군부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군부는 국민이 불만을 갖지 못하도록 외부 세계와 단절했다. 국민의 눈과 귀를 막은 것이다. 한편으로는 1000년 넘게 신주처럼 받들어 온 불교의 독경 소리를 더욱 높이면서 정신적 가치만 주입했다.
미얀마는 주류인 버마족과 이들이 믿는 불교 외에도 다양한 언어, 관습, 종족, 종교가 산재한 나라다. 중남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험준한 산악 지역이어서 교통이 발달되지 못한 데다 비가 자주 오는 등 기후도 좋지 않다. 이는 사회적 통합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역대 정권은 이를 극복하고 국민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불교를 적극 장려했다.
이런 배경에서 승려들은 정권 창출 과정의 시시비비보다는 정권이 자신들을 얼마나 잘 돌보아 주는가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은 정권이 보호하고 후원하는 대가로 사회통합 기능을 수행했다. 현재 군부정권인 국가평화발전위원회(SPDC)가 정권 창출의 불법성에도 불구하고 종교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승려를 만족시키는 방법으로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던 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미얀마 정치 상황의 변화는 승려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 군부정권은 힘이 있는 한 스스로 정권을 내놓지 않을 것이다. 국민이 아무리 군부정권을 싫어해도 승려가 국민의 어머니이자 정권의 아내와 같은 역할을 계속 수행하는 한 정치적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반면 정권이 불교를 핍박해 승려가 정권에서 멀어져 버린다면 국민은 승려와 힘을 합쳐 정권 타도에 매진할 게 틀림없다. 승려가 국민에 앞장서서 정책 변화 내지는 민주화를 요구한다면 상황은 급변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를 보면 군부정권이 상당히 자신감에 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국민이 보는 앞에서 승려를 구타하고 발포할 뿐 아니라 이들의 유일한 피난처인 사원마저 침탈한다. 정권과 불교의 전통적 관계에서는 하기 힘든 일이다. 군부는 승려의 지지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 배경에는 티베트와 톈안먼 사태를 강경 진압으로 처리한 경험이 있는 중국이 있다. 중국은 군부에 무기와 소비재를 비롯한 총수입품의 35%를 제공하며 든든한 아군 역할을 한다. 국민의 다수가 추종하는 노장 승려들이 아직 태도를 유보한 점도 군부가 갖는 자신감의 배경으로 보인다.
미얀마 군부정권은 물가 폭등에서 초래된 이번 사건을 초기에 진화해 1988년 사태와 같이 커지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사태가 악화돼도 가장 강력한 집단인 자신들만이 정정을 다시 안정시킬 유일한 세력이라고 믿는다. 1962년과 1989년 정정불안의 결과물로 네윈이 집권하고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가 등장했듯이 말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의 방향은 심히 우려스럽다. 미얀마 국민의 각성과 결집이 절실하지만 군부의 강경 진압 앞에 다시 흩어지지 않을지, 미얀마의 봄을 기대하는 국제사회의 바람과 달리 더욱 폐쇄적인 고립으로 치닫지는 않을지…. 황금의 땅 미얀마에 자유의 시간이 다시 흐를 수 있을까.
김성원 부산외국어대 미얀마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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