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다/러일전쟁下]첸 카이게 영화감독

  • 입력 2007년 9월 14일 14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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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지식인 20명에 듣는다(6)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10대 사건은?

일본의 급속한 근대화 나에게는 수수께끼-첸 카이게(陳 凱歌) 영화감독

구미 열강이 새로운 세계 시장을 만들기 위해 일으킨 것이 아편 전쟁으로, 아시아 최대의 시장으로서 중국이 선택되었다. 중국은 화이질서 안에서 외국을 오랑캐로 간주하는 교만한 나라로, 열강이 들어 왔을 때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중국인에게는 치욕이지만, 실패의 원인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해양 국가로서 국토 침범을 받지 않았던 일본에게 있어, 페리의 내항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아편 전쟁의 영향을 받아, 일본은 내정 개혁과 대외 개방, 서양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메이지 유신이 없었다면, 일본은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수수께끼인 것은, 다른 나라라면 200~300년 걸릴 변화가, 페리 내항으로부터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시간에 일본에서 일어난 것이다.

메이지의 통일 국가 형성은, 동북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근대국가가 성립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청조가 “중체서용(中體西用)” 등 전통을 둘러싼 논쟁을 하고 있었을 때, 일본은 급속히 근대화를 완성시켰다. 문화적인 요인이 있었는가. 나는 이 큰 변화의 수수께끼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일본 민족의 특징은 실패에서 배우는 점이라 생각한다. 백촌강(白村江)의 전투(663년)에서는 당나라에게 배웠고, 페리 내항에서는 서양에게, 제2차 대전의 패전으로 미국에게 배웠다.

대국 중국의 무술변법(戊戌変法)), 캉유웨이(康有為) 등의 입헌 군주제 시도는 실패했다. 동 시대의 중일 양국에서 일어난 일은 정반대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 후, 부국강병을 실현한 일본은 약자인 중국에게 전쟁을 도발했다. 중국에서는 “몸에 흉기를 지니면 반드시 살심이 생긴다.”라는 말이 있다. 양국의 전쟁은 동북아시아 천년의 역사에서 가장 비참한 사건이다. 천년이나 지속된 힘의 관계를 부수어 버렸다.

이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가 미군에 의한 일본의 점령이다. 미국에서는 1850년대부터 태평양을 내해(内海)로 한다는 구상이 있었지만, 이는 약 100년 후의 점령에 의해 완성되었다.

여기까지의 사건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이 어떻게 외래문화와 영향에 대처했는가. 중국이 어떤 식으로 스스로의 문명과 역사와 전통을 판단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아편 전쟁 이후의 중국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것은 부패한 전통 문화뿐 만이 아니라, 중국이 세계의 흐름에 한 발 늦었기 때문이다. 150년에 걸쳐 대를 이어 비극이 전해져, 자신감을 잃고 천명에 맡길 뿐이었다.

중소와 미일의 동맹 관계는 겉보기에는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 대립이지만, 중요한 것은 아시아가 서구와의 동맹 없이 스스로의 안전을 유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보인가, 퇴보인가.

어린 시절에 읽은 독일 철학에는 “악이 역사의 진보를 재촉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문화대혁명으로 괴로움과 번민이 많았지만, 그래도 문화혁명은 중국과 동아시아의 역사에 적극적인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문화혁명의 격렬한 충돌과 모순이 없었다면, 그 후의 큰 변화도 없었기 때문이다.

개혁•개방은 중국인에게 수백 년간 찾아오지 않았던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왔다. 경제와 정신, 양면의 변화와 중국인에게 새로운 자신감을 주었다. 당연히, 중국의 뿌리 깊은 “천조 사상”(왕조 의식)도 나왔다. 하지만, 중국의 발전은 초보적인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인의 국민적 자질을 높여 가야만 한다.

가까운 장래에 아시아 공동체의 실현은 어렵겠지만, 한중일의 역사적 혼돈 속에 축적된 문화의 힘이 분출할 것이다. 유교 문화권은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인터뷰: 다무라 히로쓰구 田村宏嗣)

▼첸 카이게 영화감독 약력

1952 년생. 문화혁명으로 지방의 계몽운동에 투입되어, 군대 경험도 있다. 1984년의 “황토지(黃土地)”가 데뷔작이다. 경극의 명 여배우를 그린 “메이란팡(梅蘭芳)”을 제작 중.

▼첸 카이게 영화감독의 “내가 선택한 10 대 사건”

① 아편 전쟁

② 페리 내항과 일본의 개국

③ 일본의 막부 종말과 통일 국가의 형성

④ 무술변법과 실패

⑤ 중일 전쟁

⑥ 미군의 일본 점령

⑦ 중소, 일미의 동맹 관계

⑧ 문화대혁명

⑨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⑩ 원자바오(温家宝) 수상,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의 상호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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