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비 넘겼지만…” 피마르는 가족들

  • 입력 2007년 7월 23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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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무사히…” 아프가니스탄 무장 세력에 납치된 샘물교회 의료봉사단원의 가족들이 22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국내외 언론에 단체 인터뷰를 자청한 이들은 “피랍자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성남=변영욱 기자
“제발 무사히…” 아프가니스탄 무장 세력에 납치된 샘물교회 의료봉사단원의 가족들이 22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국내외 언론에 단체 인터뷰를 자청한 이들은 “피랍자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성남=변영욱 기자
탈레반 측이 정한 2차 통첩 시한인 22일 오후 11시 반이 다가오자 TV 속보를 지켜보던 피랍자 가족들의 표정은 점차 굳어졌고 몇몇은 기도를 시작했다.

시한이 끝나기 직전 다시 협상 시한이 24시간 연장됐다는 소식이 흘러나오자 서울 서초구 서초3동 한민족복지재단 회의실에 모여 있던 피랍자 가족 25명은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당초 귀국길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가 함께 피랍된 것으로 전해진 이정란(33) 씨의 동생 이정훈(29) 씨는 “석방은 아니지만 우선은 안도했다”며 “정부를 믿고 정부의 협상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랍자 가족들은 20일 오전 처음으로 납치 사실을 접한 이래 60여 시간 동안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피가 마르는 듯한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가족들은 피랍된 이들과의 추억과 사연을 떠올리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고세훈(27) 씨의 어머니는 “떠나기 이틀 전 나를 승용차에 태우고 분당 인근으로 드라이브를 갔다”며 “봉사활동에도 열심이었지만 참 착한 아들이었다”고 말했다.

고 씨의 어머니는 “운전 중이던 아들이 ‘세상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머니에게 더 잘해 드려야 할 것 같다’고 말해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고 나무랐다”며 “그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아, 맘에 걸려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오후 분당 모 식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가족들도 애써 참아 온 눈물을 쏟아 내며 후회와 걱정의 말들을 토해 냈다.

서명화(29)·경석(27) 남매의 아버지는 “명화야, 경석아! (너희를 보내서) 지금 내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이라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그는 “좋은 일을 하러 간다기에 믿고 승낙했는데 이렇게 되고 나니 후회가 막심하다”며 “그 더운 나라에서 어떻게 먹고 씻을지…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이주연(27) 씨의 어머니는 “‘아프간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눈물이 있다’는 얘기를 하던 딸의 모습을 보고 젊은 나이에 좋은 일을 맘껏 하도록 보내 줬다”며 “하지만 이번에 잘 돌아온 다음에 다시 그런 기회가 오면 그땐 보내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 씨의 어머니는 아프간 어딘가에 있을 딸을 향해 “우리 딸, 성실하고 착해서 엄마가 ‘KS마크’라고 별명도 붙여 줬잖아. 스스로 잘 버틸 것으로 믿으니 빨리 돌아와서 맛있는 거 먹자”고 말한 뒤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기자회견에 앞서 이주연 씨의 부모는 아랍권 대표 방송인 알자지라 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샘물교회 관계자는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피랍자 가족들의 상황이 전해져 피랍자들이 무사히 석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샘물교회 봉사단원들을 아프간 현지로 초청한 한민족복지재단은 이날 샘물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태와 관련해 봉사단에 초청장을 발송하고 장소를 제공하기로 한 주체로서 국민께 매우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이 재단의 김형석 회장은 “2002년부터 아프간 현지에서 각종 봉사활동을 펼치면서 현지인들의 큰 환영을 받았다”며 “지금껏 신변 위협이나 안전상의 문제도 별로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지금은 잘잘못을 떠나 피랍된 봉사단원들의 안전과 무사 귀환이 최우선”이라며 “온국민이 함께 기원해 달라”고 말했다.

재단은 이번 사태 결과와 현지 사정에 따라 현지 지부 철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성남=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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