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특사의 길을 따라서]<2>이범진-이위종 父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북쪽 공동묘역에 있는 이범진 공사의 추모비. 답사단이 7일 방문해서 헌화하고 있다. 그는 을사늑약 뒤 일제의 소환 명령을 거부하고 현지에서 항일 외교활동을 벌였다. 아들 이위종 역시 이상설 이준 특사와 함께 세계 각국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변영욱 기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하늘은 광활하고 아름답지만 변덕스럽다. 햇살이 쨍쨍하다 싶더니 금세 두꺼운 구름이 모여들고, 비가 쏟아진다 싶더니 다시 청명한 푸른빛을 드러낸다.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청년 답사단은 7일 오전 9시 시내 북쪽의 파르골로프 3번지에 있는 공동묘역을 찾았다.

대한제국 말 충신 이범진의 추모비가 보였다. 높이 2m, 가로 1m, 폭 60cm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이범진 공사는 1852년 9월 3일 한국 서울에서 탄생하여 1911년 1월 2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순국한 대한의 충신이다’는 내용이 한글과 러시아어로 새겨져 있었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을 주도한 이범진은 미국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의 공사를 거쳐 1900년 러시아에 부임했다.

5년 뒤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된 뒤 일본의 소환 명령을 거부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항일 외교활동을 계속했다.

그는 경술국치에 분개해 이듬해인 1911년 1월 26일 노바야 제레브냐 호텔에서 목을 매단 채 총으로 자결했다. 유해는 1975년 묘역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범진이 근무하던 3층짜리 공사관 건물은 묘지에서 자동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페스텔라 5번지에 있었다.

평범한 주택가에서 공사관 건물이 가장 낡았다. 현재는 5층 규모의 임대 아파트.

한국 정부가 2002년 현관 앞에 세운 대리석 안내판에는 ‘이 건물에서 1901년부터 1905년까지 이범진 러시아 주재 대한제국 초대 상주공사가 집무했습니다’라는 내용이 기록됐다.

이상설 이준 두 특사는 보름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1907년 6월 4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범진의 아들이자 다른 특사인 이위종과 합류했다. 20세로 다른 두 특사보다 한참 젊었던 그를 현지 통신사가 발간하던 ‘석간일보’ 등은 ‘왕자’로 표현했다. 통역 겸 대변인이었지만 전면에 나서서 활동한 데다 오랜 외국생활로 언행이 세련돼 리더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위종은 만국기자협회에서 일본의 침략행위를 성토하는 프랑스어 연설로 청중을 감동시켰다. 이준 열사가 순국한 뒤에는 이상설과 함께 유럽을 돌며 한국의 독립을 호소했다.

1908년에는 부친의 지시대로 군자금을 갖고 연해주로 가서 안중근 이범윤과 함께 항일 의병단체인 ‘동의회’를 조직했다.

이위종의 말년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이 없다. 1912년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고 소비에트 붉은 군대에서 기관총 부대장으로 복무하다가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답사단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6일 중간 기착지인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 고려인연합회 강당에서 이범진 이위종 부자를 주제로 한 학술회의가 열렸다.

박종수(50) 주러 한국대사관 공사참사와 조바실리(57) 러시아 고려인연합회장, 박벨라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연구원 등이 참석했다.

러시아 유학 시절부터 이범진 부자의 생애에 대해 연구한 박 공사참사는 “러시아와 한국 간 외교 협력 관계의 진전이 더딘 까닭에 수많은 순국선열의 자취가 묻혀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주최: 동아일보사 기독교대한감리회

● 후원: 주네덜란드 한국대사관 네덜란드 헤이그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