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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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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의 프랑스 대선 결과는 프랑스 좌파에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12년 집권에 앞으로 5년을 더하면 17년 연속 우파가 집권하게 된다.
1차 투표에 공산당을 대표해 나섰던 마리조르주 뷔페 후보는 “정치적 재앙”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사회당 소속의 로랑 파비위스 전 총리는 “좌파의 깃발이 땅에 떨어졌다”고 한탄했다.
대선전 초기만 해도 이번에는 좌우 정권 교체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됐다. 우파 시라크 정부가 집권 12년 동안 제대로 이뤄 놓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수의 유권자는 변화를 바라면서도, 아니 진심으로 ‘바랐기 때문에’ 좌파 후보를 외면하고 새로운 우파 인물을 선택했다.
좌파 세력의 퇴조가 완연한 유럽 대륙에서 이번 선거의 상징성은 매우 컸다. 좌파인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는 1차 투표 직전 툴루즈에서 열린 사회당 유세에 참석해 세골렌 루아얄 후보를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관심이 이 정도로 높았기에 이번 대선 결과는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체의 좌파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탈리아 우파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의 승리는 유럽이 사회주의에 피로를 느낀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루아얄 후보의 패배는 유럽에서 더는 좌파의 통치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며 “변화의 열망이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을 휩쓸 것”이라고 말했다.
제러미 수리 미국 위스콘신대 역사학 교수는 언론 기고문에서 “루아얄 후보는 서유럽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사회당을 이끌었다. 그런데도 패배했다는 것은 이번 선거를 통해 유럽에서 사회주의가 끝났음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20세기가 끝날 무렵까지는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 국가에서 좌파가 크게 득세했다. 1998년 독일 총선에서 사회민주당(SPD)이 승리한 직후에는 유럽연합(EU) 15개국 가운데 13개국이 좌파 정부의 통치 아래 놓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는 우파가 대약진에 나서면서 전세를 뒤집었다. 게다가 프랑스를 제외한 나머지 유럽 국가의 좌파는 이미 상당 부분 중도로 기운 상태다.
영국의 노동당과 독일의 사민당도 당 이름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제3의 길’ ‘새로운 중도’ 노선을 천명하며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탓에 이른바 ‘무늬만 좌파’라는 얘기를 듣는다.
특히 영국 노동당은 대대적인 민영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로 대표되는 대처리즘과 별다른 차별성을 두지 않는 정책을 펴는 탓에 학계 일각에선 ‘계급 정당의 종말’ 여부를 둘러싼 논쟁마저 벌어지고 있다.
좌파의 보루로 여겨지던 스웨덴에서도 지난해 총선에서 보수당이 주도하는 중도우파연합이 승리했다. 여기에다 좌파의 대표 선수 격이던 프랑스 좌파마저 무릎을 꿇어 유럽의 좌파는 앞으로 상당 기간 영향력을 상실할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유럽 좌파의 퇴조는 중도파의 약진과 좌우 연정의 확산을 낳았다.
프랑스에서 루아얄 후보의 실패 이면에는 중도파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민주동맹 후보의 약진이 자리하고 있다. 바이루 후보는 1차 투표 때 18.57%의 기록적인 득표율을 거두며 약진했고 6월 총선에서 또 다른 돌풍을 기대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2005년 우파가 주도하는 기민·기사련과 사민당의 좌우 대연정이 출범했고, 오스트리아도 지난해 사민당이 불과 1% 차로 집권 인민당을 이겼으나 총리가 바뀐 것 외엔 이전과 똑같은 좌우 대연정이 실시되고 있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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