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특정 다수의 흡연피해 담배회사에 책임 못물어"

  • 입력 2007년 2월 21일 15시 28분


미 연방대법원이 20일 흡연피해를 이유로 담배회사에 거액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에 제동을 걸었다.

최근 추세에 발맞춰 기업의 손을 사실상 들어준 이날 판결은 현재 계류 중인 다른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 청구소송이나 제조물 책임 관련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뒤집힌 판단=연방대법원은 폐암으로 숨진 남편의 부인 마욜라 윌리엄스가 필립 모리스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회사 측이 징벌적 배상금으로 7950만 달러(약 660억원)를 지급해야 한다는 기존 판결은 부당하다"며 사건을 오리건주 대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논란 끝에 5대 4로 결정된 이번 판결은 "징벌적 손해배상은 소송 당사자의 피해에 국한해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다수 의견을 낸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은 "소송에 참여하지 않는 불특정다수의 흡연피해에 대해서까지 담배회사를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밝혔다.

다수의견에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강경보수파인 새뮤얼 앨리토 대법관 등이 가세했다.

그러나 대법관들은 원고가 요구한 징벌적 손해배상금이 '헌법에 어긋날 만큼 과도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악의적인 불법행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처벌하기 위해 추가로 물리는 일종의 벌금. 금액의 제한규정이 없어 기업들 사이에서는 "판결 때문에 파산할 판"이라는 불만이 드높았다.

재판 과정에서 필립모리스는 "징벌적 배상금 규모는 실제 손해배상금의 4배 이내에서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 사건에서 윌리엄스는 남편이 45년간 하루 두 갑씩 말보로 담배를 피우다 1997년 67세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하자 소송을 냈다. 1차로 82만 달러의 배상판결을 받았지만 주(州)법의 제한 때문에 배상금이 52만 달러로 깎이자 99년 추가로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주 대법원에서 이겼다. 당시 청구금액은 눈 덩이처럼 불어난 법정이자를 포함해 무려 1억3000만 달러. 담배소송 사상 최대 액수였다.

미 상공회의소의 로빈 콘래드 법무 담당 부회장은 "이번 판결은 재계의 커다란 승리"라며 "부당한 징벌적 손해배상으로부터 기업들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상반된 판결=그렇다고 담배회사들이 마냥 좋아할 상황은 아니다.

같은 날 연방대법원은 "주 정부가 담배에 건강기금을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담배업체들이 낸 위헌소송은 기각했다. 기각 이유나 소수의견도 전혀 달지 않아 담배회사들의 주장을 무색케 만들었다.

이 소송은 미네소타 주정부가 2005년 치료비 등 흡연의 피해 회복에 사용할 기금 마련을 위해 담배 1갑당 75센트의 기금을 부과하자 담배회사들이 공동으로 낸 것. 필립모리스와 R.J. 레이놀즈 등은 주 법원에서 계속 패소한 뒤 연방대법원에 상고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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