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 후세인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 입력 2007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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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를 썼고, 남겨놓았던 빵 조각을 새들에게 뿌려주는가 하면 메마른 잡초에 물을 줬다. 겉으로 알려진 독재자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처형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수감 생활을 옆에서 지켜본 한 미군의 회상이다. 2004년 1월부터 2005년 8월까지 후세인의 수석 의료고문을 지낸 로버트 엘리스(56·사진) 상사. 그는 하루에 두 번씩 그의 상태를 체크해 상황보고서를 쓴 책임자였다. 후세인은 식사를 문 밑 틈새로 넣어주자 “동물처럼 취급하지 말라”며 식사를 거부했으나 간수들이 문을 열고 넣어주자 음식을 먹었다. 그는 담배와 커피를 즐겼으며 엘리스 상사에게 함께 담배를 피우자고 권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친해지자 후세인은 젊은 시절 농부로 일할 때의 경험, 자식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책을 읽어준 일, 어린 딸이 배가 아프다고 해서 약을 준 기억을 이야기해 줬다. 엘리스 상사가 “형제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어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자 그를 껴안으며 “내가 당신의 형제가 되어주겠다”며 위로했다.

엘리스 상사는 “후세인은 수감 생활 중에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불평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을 때는 문제 제기를 했다”며 “그는 감옥 안에서 자신을 돕는 사람들을 존중했다”고 전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이라크 저항세력’ 실체와 오해▼

종파-정파 다르면 ‘적’…동족에도 총구

"'무크타다'라고? 쳇-."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이승에서 경멸과 증오심을 담아 던진 마지막 말은 '무크타다'란 단어다. 지난달 30일 교수대에 올라서기 직전의 일이다. 함께 기도문을 외던 사형집행관들이 기도 마지막에 "무크타다를 도우소서"라고 기도하자 후세인은 즉각 고개를 들고 매몰차게 반박하면서 말싸움을 벌였다.

'무크타다'는 현재 수니파 주민들 및 미군에 대한 공격에 앞장서고 있는 시아파 민병대 지도자 무크타다 알 사드를 뜻한다. 사형집행 직전 수니파 출신 독재자와 시아파 집행관들 사이에 벌어진 이 같은 설전은 현재 이라크 사회의 갈등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폭탄을 가득 실은 차량을 몰고 시민들 속으로 돌진하는 끝없는 폭탄테러 행렬, 동족 수십명을 거리낌 없이 살상하는 이라크 저항세력은 과연 누구인가. 최근 한국의 인터넷에는 이라크 저항세력을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 고려시대 삼별초의 저항 등에 비유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과연 그 같은 해석은 타당한 것인지도 짚어본다.

▽저항세력의 실체= 이라크 전문가들과 미 국방부, 현지 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이라크내 유혈사태를 주도하는 세력은 크게 △알 카에다를 비롯한 테러 전문 조직 △후세인 시절 집권세력인 바트당 잔당을 중심으로 한 수니파 저항세력 △시아파 민병대를 비롯한 종파별 무장세력 등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이라크내에서 활동중인 전문적 테러조직원은 외국에서 침투한 1000여 명과 이라크인 수니파 원리주의자 출신 500여 명 등으로 추산된다. 이들 가운데 알 카에다 조직원들은 미군과 연합군, 새 이라크 정부 가담자, 이라크 민간인(주로 시아파)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 테러를 자행한다. 유혈사태를 통한 혼란 조성 자체가 목표처럼 비쳐진다. 반면 이라크내 자생 테러조직인 안사르 알 수나는 이라크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테러에는 반대한다.

후세인 잔당을 포함한 수니파 저항세력은 2003년 바그다드 함락 직후엔 저항세력의 중심이었지만 현재는 1만5000명 안팎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미군 뿐만 아니라 이라크 군 참여자들에 대한 공격에 집중한다. 또한 시아파 민병대로부터 수니파 주민을 보호하는 자경대 활동을 자임하며 시아파 민병대와 유혈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 수니파 저항 세력 가운데 일부는 현 이라크 정부가 제창하는 '국가적 화해와 대화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지만 시아파 주도 정부에서 소외될 것이 분명해지자 다시 과격한 투쟁으로 회귀하는 경우가 많다.

후세인 처형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세력은 바로 이들이다. 당장은 후세인을 '순교자'로 간주하며 더욱 격렬한 저항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지만 앞으로 이라크 정부가 과감한 화해, 포용 정책을 펼 경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비적극적 협력자로 돌아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수니파와 충돌하는 시아파 민병대 가운데는 무크타다가 이끄는 메흐드 민병대가 가장 과격하고 규모가 크다.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포퓰리스트로 평가받는 무크타다는 후세인의 수니파 정권에서 핍박받았으며 이제는 미군도 싫고 수니파 잔존세력의 보복 공격을 두려워 하는 처지인 시아파 주민들로부터 '수호자'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는 힘 빠진 미군이 물러나기만 하면 다수를 차지하는 시아파를 등에 업고 정국의 주도권을 틀어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미 국방부는 분석하고 있다.

사드르는 2003년 4월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 시아파 온건 지도자 압둘 마지드 알 코에이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바그다드의 사드르시티, 나자프 등을 거점으로 미군에 저항을 시작했다. 2004년 미군이 조직한 이라크과도통치위원회에 대항해 독자 정부 수립을 선포했지만 지난해 1월 총선에는 참여, 현재 275석 가운데 30석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무장투쟁의 양상과 목적= 이처럼 여러 분파로 분류되는 이라크내 저항세력들은 연합군과 새 이라크 정부 관리 및 협력자들 이외에도 서로를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한달에 1000건(지난해 11월 기준)을 넘는 이라크내 공격 행위를 분석해보면 건수로는 3분의 2가량이 미군과 새 이라크 정부 협력자들을 주 타겟으로 한 공격이다. 하지만 인명피해의 대부분은 무고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나머지 3분의 1 가량의 무차별 테러에서 발생한다.

이들은 "미국에 협력하는 배신자들을 처단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론 폭탄테러 가운데 상당수가 어린이와 여성 등 무고한 시민들이 모여 있는 곳을 겨냥해 자행된다. 다른 종파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내전상황으로 몰고 감으로써 정국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어가는 양상인 것이다.

이들을 이끄는 저항세력 지도자들의 의중에는 미군철수 뿐만 아니라 미군철수 이후 정국 주도권 장악, 타 종파·타 종족에 대한 적개감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처럼 이라크 저항세력의 실체와 투쟁 목적, 투쟁방식을 감안할 때 이들을 항일 독립투사와 비교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임이 분명해진다. 동족인 무고한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는 점, 투쟁의 목적이 외세 뿐만 아니라 타 종파에 대한 적대감과 향후 주도권 장악을 위한 것이라는 점, 사상 최악의 독재정권 시절 특권을 누리던 잔당들이 빼앗긴 권력을 되찾으려는 점 등은 항일독립투쟁 등 제국주의 시절 반외세 투쟁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대목들이다.

게다가 미군철수가 이들의 핵심요구사항인 것은 사실이지만 미군이 철수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가 무장세력들간의 종파분쟁이 격화돼 무정부 상태가 빚어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임은 이들도 알고 있다. 미군철수를 요구하는 저항세력의 존재 자체가 미군철수를 막는 요인이 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미국내에선 이라크전을 베트남전쟁과 비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이라크 상황이 헤어날길 없는 수렁에 빠진 것 같은 상황이라는 점은 유사하지만 베트남전 당시 활동한 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 이라크 저항세력은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미국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베트남전 당시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존스홉킨스대학의 돈 오버도퍼 교수는 "베트남의 저항세력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져온 반 제국주의 투쟁의 맥락속에서 민족해방을 목표로 결집돼 활동한 반면 이라크 저항세력은 종파간 갈등, 권력투쟁 등 여러 요소들이 뒤섞여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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