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 러 우회 압박?

  • 입력 2006년 10월 23일 0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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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잃은 슬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1일 오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남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모스크비치 호텔.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 장관은 괴한의 총에 맞아 숨진 러시아 여기자 안나 폴릿콥스카야(48) 씨의 아들 일리치 폴릿콥스키(28) 씨를 만나 유창한 러시아어로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폴릿콥스카야 기자는 군인과 관리들이 체첸에서 저지른 고문과 폭행 사건을 일간지 노바야 가제타에 심층 보도해 ‘러시아의 양심’이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가 숨진 지 13일이 지났지만 살인자와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사망 경위를 밝혀 내지 못한 러시아는 국제사회에서 ‘언론 자유와 인권 상황을 개선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 사건 이후 독일을 방문했다가 폴릿콥스카야 기자의 사진을 든 시위대와 마주치기도 했다.

라이스 장관은 이날 오후 푸틴 대통령, 세르게이 이바노프 국방장관 등 러시아의 최고 권력자들과 연쇄 접촉을 앞두고 유족을 만나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유족 면담은 라이스 장관이 이날 중국 베이징(北京)을 떠나기 전 스스로 요청했다고 장관 수행원들이 전했다.

라이스 장관이 바쁜 일정을 쪼개 유족을 만난 것은 북한 핵실험과 이란 핵문제 등에서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미국의 어려운 처지와 관련이 깊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는 “대북 제재는 징벌이 아닌 예방 차원에서 실행돼야 하며 이란 핵 제재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모스크바의 한 외교 소식통은 “중요 고비마다 미국의 발목을 잡는 러시아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대북 제재의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라 (러시아의 양보를 이끌어 내기 위해) 라이스 장관이 유족 면담을 일정에 포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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