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공종식]경찰이 대접받는 나라

  • 입력 2006년 9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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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특파원으로 있는 기자는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 등 뉴욕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을 꼼꼼하게 읽는 편이다. 오랫동안 기자로 일해 온 경험 때문에 신문마다 신문의 얼굴인 1면의 지면 배치를 어떻게 하는지를 특히 눈여겨보곤 한다.

그런데 8월 28일자 뉴욕타임스 1면이 눈길을 끌었다. 전날인 27일은 콤에어 항공기가 미국 국내에서 추락해 모두 49명이 죽은 사건이 발생한 날이었다. 이 사고는 최근 5년간 미국에서 발생한 항공기 사고 중 가장 큰 사고였다.

그런데 다음 날인 28일자 뉴욕타임스 1면은 전날 뉴욕 브롱크스에서 발생한 화재로 중상을 입은 소방관을 긴급 수송하는 사진이 주요 사진으로 크게 게재됐다. 비행기 추락 사진은 그 아래 조그맣게 실렸다.

브롱크스 화재는 소방관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뉴욕타임스뿐만 아니라 방송들도 브롱크스 화재사건을 항공기 추락사고 못지않게 중요하게 취급했다.

며칠 뒤 장례식은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물론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주 등 인근 3개 주 소방관 수백 명이 모인 가운데 치러졌다. 엄숙하게 진행되는 장례식을 TV를 통해 지켜보다 기자의 가슴까지 뭉클해졌다. 그만큼 장례식은 감동적이었다.

경찰관 희생에 대한 미국 사회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올해 초 뉴욕 인근의 뉴저지 주에서는 야간에 비상연락을 받고 출동하던 경찰차가 강물에 추락하면서 차에 타고 있던 경찰관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극적인 총격전’으로 사망한 것도 아니었고, 일종의 사고사였다. 그런데도 뉴욕타임스 등 현지 신문과 방송들은 사고 경위와 장례식을 크게 보도했으며 해당 경찰관은 영웅으로 간주됐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경찰이나 소방관들이 공무를 수행하다 숨지면 예외 없이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간주된다. 시민들도 희생자를 ‘영웅’이라고 부르면서 각별한 관심을 표명한다.

희생자에 대한 보상도 파격적이다. 뉴욕 시는 만약 경찰이 근무 중 사망하면 남은 배우자가 사망할 때까지 해당 경찰이 생전에 받던 봉급을 지급할 정도다.

군인들에 대한 대우도 남다르다. 군 출신으로 사망하면 유가족들은 장례식에 군 의장대 서비스를 요청할 수도 있다. 생전에 국가를 위해 봉사한 것에 대한 마지막 작은 보답인 셈이다.

미국에서는 국가와 다른 사람을 위해 때로는 생명까지 바치며 위험을 감수하는 직종에 대해서는 남다른 존경심을 표명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다. 경찰관 소방관 군인 등이 대표적인 직종이다. 소방차가 출동하면 모든 차들은 정차한 뒤 예외 없이 비켜 준다. 또 도시마다 주요한 행사가 열리면 꼭 소방차를 앞세우고 행진하는 것도 미국 사회의 오래된 전통이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경찰의 결정에 불복절차를 밟을 수는 있지만 평범한 미국인이 현장에서 경찰관 지시에 불응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미국 경찰관이 모두 ‘천사’들로만 구성돼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도 부패한 경찰관이 끊임없이 적발된다. 그런데도 대체로 경찰은 법과 권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범죄자가 아니라면 경찰지시를 거역하는 일은 거의 없을 정도다.

한국처럼 시위대가 경찰을 향해 각목을 휘두른다거나 화염병을 던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실제로 얼마 전 미국 TV에서는 한국의 과격 시위 장면이 ‘가장 놀라운 비디오’로 소개되기도 했다. 미국 시청자 입장에서는 시위대가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을 공격하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장면’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제 사회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공직자에 대해서는 권위를 인정하고 직무 수행 중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예우하는 과감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공종식 뉴욕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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