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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9월 6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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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주의 이론가 마이클 샌델(52·정치철학) 하버드대 교수가 한국철학학회의 다산기념철학강좌 초청으로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샌델 교수는 5일 회견에서 신보수주의와 뚜렷하게 차별되는 미국적 보수주의의 갈래로서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의 의미를 설명했다.
“흑인 저소득층들이 슈퍼돔에서 생활하는 장면은 이민자들로 구성된 미국 사회가 처한 위기, 곧 공동체 정신의 상실을 보여 준다. 반면 동질성이 가장 강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사회복지제도가 가장 발달했다는 점은 자신들이 공동운명체라는 사회적 연대감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준다. 미국이 그러한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는 길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꿈꿨던 공화주의를 회복하는 것이다.”
샌델 교수는 27세에 하버드대 교수가 되고 29세에 미국 자유주의의 대이론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1971년)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1982년)를 발표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이 책에서 ‘공동체주의자(communitarian)’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그 깃발 아래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노터데임대 교수, 마이클 월저 프린스턴대 교수, 찰스 테일러 캐나다 맥길대 교수 등을 끌어 모아 공동체주의의 4대 이론가로 손꼽히고 있다.
공동체주의는 개인의 정체성은 자신이 속한 가족, 계급, 국가 등 공동체에 대한 연대와 애착을 통해 구성된다고 보며, 공동체적 가치에 기초한 덕성의 함양을 강조한다. 샌델 교수는 이런 맥락에서 자유주의적 인간관을 개인을 파편화시키는 ‘무연고적 인간관’이라고 비판한다. 또 자유주의적 다원주의가 중립성을 표방하면서 오히려 그 구성원들이 공공의 문제에 적극 참여할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와 종교를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낙태나 배아복제, 동성애, 안락사 등의 문제에서 그 사회의 전통적 윤리와 종교를 떼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사회 고유의 윤리와 종교를 공적 영역으로 가져오는 것은 오히려 정치를 풍성하게 만든다.”
그가 미국적 공동체주의로 제시하는 공화주의는 제도적 차원에서는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을 혼합한 정치체제(공화정)를 의미하고, 사상적으로는 공익 우선, 검약, 근면, 절제와 같은 시민적 덕성의 함양을 통해 국민의 타락을 막아야 한다는 정치사상이다.
물질적 요소보다 정신적 요소를 강조하고 세계적 보편성보다 지역적 특수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화주의는 보수적 사상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공화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미국 공화당의 이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샌델 교수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구성원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에 대해 샌델 교수는 “나는 공화당원이 아니다”라며 “나의 공동체주의는 내가 소속한 공동체만큼 내가 소속하지 않은 공동체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며, 공동체 내부에서는 다수의 선택이 지배적 가치가 되기에 앞서 이것이 옳은 것인지 충분히 따져보고 시험해 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황우석(黃禹錫) 교수의 인간배아 줄기세포 복제에 대해 “인간 복제는 허용해서는 안 되지만 배아줄기세포의 복제는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며 부시 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밝혔고 “9·11테러의 응징으로 아프가니스탄전쟁은 정당하지만 이라크전쟁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의 선택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는 개인을 고립시키고 파편화하며 정치의 공공성을 파괴하고 있다”며 “복지·의료·교육처럼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규정하는 공공의 영역을 시장에만 맡길 경우 뉴올리언스 사태처럼 품위 있는 삶이 불가능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샌델 교수는 이날 서울대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주제로 강연한 데 이어 ‘줄기세포 연구, 인간복제 및 유전공학의 윤리’(6일 오후 2시 한국프레스센터), ‘자유주의와 무연고적 자아’(8일 오후 3시 경북대), ‘세계화시대의 정치적 정체성’(9일 오후 3시 전북대)을 주제로 강연을 펼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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