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래 준비하고 있나]美정부 예측, 사회 전분야 망라

  • 입력 2005년 8월 23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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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서울에서 열린 ‘디지털포럼’ 행사에서 있었던 일.

국내 한 인사가 행사에 참석한 해외 미래학자들에게 “한국에서도 최근 2010년 이후를 다룬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소개하자 “어떤 방법론을 썼느냐” “몇 년간 데이터를 모았느냐”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말문이 막힌 국내 인사에게 “미래학에선 최소한 4, 5가지 정해진 방법론을 써서 10년 이상의 데이터 추세를 분석해야 한다”는 충고가 돌아왔다. 연구소 차원에서 불과 몇 개월 작업하거나

상상의 날개를 편 것은 ‘미래예측보고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래 예측에 대한 국내외의 수준 차이를 잘 드러낸 일화다.》

○ 미래에 관심 높은 해외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래예측보고서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만든다. 보고서를 접한 사람들은 맨 먼저 이 보고서를 정보기관에서 만든다는 점에 놀라지만 콘텐츠의 범위와 깊이를 보면 더욱 놀란다.

CIA는 2020년을 내다 본 ‘2020 리포트’를 만들어 내기 위해 세계적인 전문가 25명으로 팀을 꾸렸다. ‘안티 아메리카니즘’ ‘유럽의 무슬림’ ‘전쟁의 본질과 변화’ ‘기후변화’ 등 인간 사회의 모든 분야가 망라됐고 2003년 9월부터 2004년 10월까지 6개국에서 총 29차례 회의를 열었다.

미국은 정례적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보고서를 펴낸다. 국가 전체적으로 미래 예측 컨설팅 비용에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2%를 쓴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일본도 최근 ‘일본 21세기 비전’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를 만드는 작업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를 비롯해 각료, 도쿄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 보고서에는 2030년 일본의 국제적 위치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들어 있다.

○ 미래 예측은 정부의 ‘의무’

미국은 1981년부터 격년으로 공무원 대상 ‘미래예측 논문 경시대회’를 연다.

2003년 대회 경제 분야에선 ‘국제 목화시장의 무역 자유화 예측’, 보건복지 분야에선 ‘간호사 부족에 대한 수급 연구’ 등 다양한 논문이 쏟아졌다. 짧게는 5∼10년에서 길게는 2050년에 이르는 미래를 내다보는 내용들이다.

미국 연방정부의 미래전략회의는 올해 4월 ‘전망에 대한 국제 트렌드의 영향’이라는 회의를 열었는데 11개 정부 부처와 기관이 후원했다.

호주 총리 직속기관인 정부 공무원위원회는 매달 미래전략 훈련과정을 의무적으로 교육시킨다. 공무원들은 시나리오 계획법, 델파이 기법을 비롯한 여론조사 방법을 배우고 실제로 예측을 해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세계미래회의에 참석하는 인원 가운데 절반 이상은 공무원이다. 제대로 미래를 읽지 못하면 제대로 된 정책도 내놓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 한국은 지금 몇 시인가

한국정부의 미래 예측은 아직 과학기술 분야에 한정돼 있다. 국가가 나아가야 할 전체적인 방향에 대한 정교한 분석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달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미래회의에 참석했던 LG경제연구원 문권모(文權模) 연구원은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뜻에 맞게 ‘미래는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대로 미래가 만들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국가정보원이 CIA 리포트를 염두에 두고 ‘2005 비전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늦었지만 눈여겨볼 만하다.

국정원은 민간 전문가를 중심으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한국의 미래 청사진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이제라도 미래 예측과 전략을 담당하는 상설기구를 두고 미래 예측을 중요한 국가 과제 가운데 하나로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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