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과잉시대’ 종이신문의 저널리즘

  • 입력 2005년 3월 31일 20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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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명.’ 2005년 현재 세계신문협회(WAN)가 추산하는, 종이신문을 읽는 전 세계인 수다. 라디오와 TV, 인터넷….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은 그때마다 종이신문의 소멸을 알리는 ‘조종(弔鐘)’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은 그보다 앞서 존재한 미디어의 퇴출보다는 정보에 대한 허기와 욕망을 더 키우는 쪽으로 진행돼 왔다.

종이신문의 쇠락이 자명한 사실로 여겨지는 21세기, 역설적이게도 종이신문은 1600년대 유럽에서 탄생한 이래 최대의 양으로 매일 지구촌 곳곳에서 읽히고 있다. 동아일보 탄생 100년이자 인터넷 탄생 25년이 되는 2020년의 종이신문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 미디어 연구가들의 예상을 정리해봤다.

● ‘종이’, 멀티미디어의 재발견

최근 일본의 생활운동가들은 ‘오감(五感) 회복’을 주장한다. TV와 인터넷 등으로 경험하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에 압도돼 가상과 실재의 경계가 불분명해진 현대인의 삶을 인간적인 것으로 되돌리자는 것이다. ‘만질 수 있는’ 정보인 종이신문은 이렇게 ‘실재의 회복’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의 대두와 함께 비교 우위를 갖게 된다. 촉각은 오감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감각.

“라디오 TV 인터넷 등은 인간의 오감 중 청각과 시각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반면 종이신문은 직접 매체를 만지면서 촉각과 시각의 공감각을 통해 기억을 재생하거나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게 만든다. 미래사회에는 이런 직접 체험의 가치가 고평가될 것이다. 뉴미디어에 비해 열등하게 여겨졌던 종이신문이 오히려 촉각과 시각 심지어 후각까지 공감각적으로 담기는 지적인 멀티미디어로 재발견될 것이다.”(김경균 정보공학연구소장)

● 전문 블로거 & 콘텐츠 프로바이더

그러나 2020년의 종이신문은 현재와 같은 양태로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원광연 한국과학기술원(KAIST·전산학과) 교수는 “2020년엔 종이신문이 실제 기사보다는 기사에 도달하기 위한 링크 혹은 포인터로 기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김영석 연세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단순 뉴스의 전달은 포털사이트나 모바일 서비스 등이 담당하고 종이신문 등 전통적인 언론 매체는 현상에 대한 심층 취재를 통해 독자에게 해석의 관점을 제공하는 뷰스페이퍼(viewspaper)로 진화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기자에게 부과되는 과제는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기자는 자신의 취재 분야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 공시적, 통시적 정보력과 균형 있는 판단력을 요구받게 된다. 김 교수는 “2020년 권위 있는 신문사들은 각 회사 브랜드에 동의하는 전문 블로거(기자)가 심층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신문사는 종이신문을 포함한 다양한 매체에 이를 제공하는 콘텐츠 프로바이더(contents provider)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 개인화, 마이크로미디어화

원 교수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종이신문의 형태가 보다 개인화, 마이크로미디어화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미디어 연구가들은 종이가 값싼 매체로 인식되는 현재와 달리 2020년에는 종이가 ‘고급, 고가의 매체’가 될 것이기 때문에 종이신문을 선택한 독자를 위한 차별화된 서비스는 필연적인 변화라고 말한다.

원 교수는 △매일 아침 각 개인에게 맞춤형 신문이 배달된다 △맞춤형 신문을 위한 디지털 인쇄·배달 설비가 개발된다 △맞춤형 신문에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부문 기사의 비율이 개인의 관심도에 따라 조정된다 △신문이 구독자의 하루 일정이나 구독자와 ‘일촌’ 관계로 설정된 사람들의 일과나 동향을 알려 준다는 등의 예상도를 제시한다.

2020년 종이신문의 독자는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차별화된 정보에 대한 소비 욕구가 강하고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용의와 능력이 있는 ‘특정 다수’가 될 것이다.

정리〓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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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판단 해석능력 큰 장점 정보 넘칠수록 신문 빛날 것”…아사히신문 요시다 편집국장

“바야흐로 정보가 지나칠 정도로 넘쳐나는 ‘과(過)정보화 사회’입니다. 신문의 위기를 얘기하는 이들이 많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갖춘 신문의 장점은 더욱 빛날 수 있습니다. 정보의 범람 속에서 역으로 신문의 미래를 찾을 수 있다는 얘기지요.”

일본을 대표하는 권위지 아사히신문의 지면 제작을 총지휘하는 요시다 신이치(吉田愼一·55·사진) 편집국장은 지난달 31일 “신문의 장래를 걱정하는 의견이 많지만 신문 고유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신문은 뉴미디어의 도전을 이겨내고 독자에게 사랑 받는 매체로 거듭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종이 신문의 위기’라는 지적이 많은데 일본의 상황은 어떤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부수 면에서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신문업계 전체적으로 2001년 4400만 부를 정점으로 매년 20만 부씩 감소 중이고, 최근 10년간 폐간한 신문도 8개나 된다. 출산율 저하로 세대 수 자체가 늘어나지 않은데다 인터넷이 젊은 층의 정보전달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신문은 소멸할 것인가.

“1950년대에 TV가 일본 사회에 등장했을 때도 신문의 위기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신문은 시대 변화에 맞게 변신해 자신만의 역할을 찾아냈다. 정보기술(IT) 시대에도 종이 신문은 나름의 영역을 발견해 낼 것이다. 앞으로 10년 안에 이뤄지지 않을까.” ―신문의 생존을 점치는 근거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신문은 기사 가치가 큰 뉴스와 작은 뉴스를 구별해내고, 뉴스를 단순 나열하는 게 아니라 가치판단을 더해 독자에게 제공한다.” 요시다 국장은 “인터넷의 정보가 ‘흘러가는 뉴스’라면 신문은 뉴스를 축적, 저장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 있다”며 “이런 기능이 살아 있는 한 정보과잉 시대의 항로를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매체환경 변화에 대응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신문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신문을 읽으면 좋은 점 등을 젊은 층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작년부터 화제의 책을 쓴 저자가 초중학교의 교실을 직접 방문해 책을 쓴 이유와 책읽기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저자의 방문(author’s visit)’ 행사를 50여 차례 실시한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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