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선택, 보수주의]<2>‘강력한 손’ 기독교

  • 입력 2005년 3월 7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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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기독교인으로 거듭났다”워싱턴의 한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부와 딕 체니 부통령 부부(앞줄 왼쪽부터). 뒷줄에는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과 어머니 바버라 여사가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기독교인으로 거듭났다”고 말하는 복음주의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부시 “기독교인으로 거듭났다”
워싱턴의 한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부와 딕 체니 부통령 부부(앞줄 왼쪽부터). 뒷줄에는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과 어머니 바버라 여사가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기독교인으로 거듭났다”고 말하는 복음주의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2년 3월 24일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에서 예정에 없던 일요예배가 열렸다. 장로교 목사의 딸인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현 국무장관)이 사회를 보고, 별명이 ‘선지자’인 캐런 휴스 대통령공보비서가 성경을 읽었다. 40여 명이 참가한 예배는 찬송가 405장 ‘Amazing Grace’를 합창하는 것으로 끝났다.

기독교 신앙이 미 정치의 심장부인 백악관, 나아가 미 사회 전체에 얼마나 깊게 파고들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복음주의 기독교(evangelicalism)의 정치적 영향력=지난해 대선은 종교가 선거 판도를 가를 만큼 미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줬다.

특히 전체 인구의 21∼26%를 차지하는 복음주의 기독교도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지지는 그의 당선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전체 기독교도 중 부시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은 59%로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였지만, 성서의 무오류를 확신하는 복음주의 기독교도는 무려 78%가 부시 대통령에게 몰표를 던졌다. 지난해 공화당원으로 신규 유권자 등록을 한 400만∼500만 명 가운데 대다수가 복음주의 기독교도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복음주의 기독교의 정치적 영향력은 일부 지도자들이 기독교 보수주의를 미국의 바람직한 미래로 설정하고, 현실 정치에 깊숙이 접목시킴으로써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정치와 손잡은 교회=뉴욕타임스는 지난해 초 보수적 교회 지도자 14명이 2003년 여름 워싱턴 인근에서 나눈 비공개 대화 내용을 보도했다.

미국가족연합의 창시자인 도널드 윌덤 목사가 주도한 이 모임에서 동성결혼 금지 개헌운동의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다.

때마침 민주당 대통령후보인 존 케리 상원의원의 선거구인 매사추세츠 주 법원이 “동성 커플의 권리제한은 주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시했고, 케리 후보도 이를 지지했다. 기독교 단체들은 즉각 ‘케리 후보=가족개념 파괴자’라는 논리를 앞세워 범기독교인 결집 운동을 펼쳤다. 이미 계획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은 수정헌법 2조에서 정치와 교회의 분리를 규정한 나라다. 그러나 정치와 교회의 ‘이종(異種)교배’는 이처럼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기독교 보수주의의 역사=미국의 기독교가 늘 보수적 정치색을 띤 것은 아니었다. 1960, 70년대에는 리버럴 기독교가 탄탄한 전국 조직을 바탕으로 선거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린든 존슨(텍사스), 지미 카터(조지아)와 같은 신앙심 강한 남부 출신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된 것도 그런 영향력 때문이었다.

프랑스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2004년 저서 ‘미국 문명론(Made in USA)’에서 “그러나 1960년대 자유주의적 히피 문화가 상징하는 규범 없이 살기, 멋대로 옷 입기 풍조가 보수적 기독교인의 결집을 불렀다”고 썼다.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기독교 냄새가 없는 ‘해피 홀리데이’로 연말 인사를 해야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자유주의적 사고의 파급도 보수적 기독교계의 단합을 재촉했다. 1973년 미 연방대법원의 ‘낙태는 합헌’이라는 결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다.

‘기독교연합’과 같은 결사체는 이런 흐름을 타고 태어났다. 이 단체는 “가족으로 돌아가자”고 외치고 있다.

리 에드워즈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은 “집집마다 배달되는 기독교 단체의 ‘다이렉트 메일(DM)’은 기독교적 보수이론 전파에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복음주의 기독교의 정치적 자신감=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계기로 기독교적 생활방식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지난해 말에도 ‘메리 크리스마스’를 둘러싼 논쟁이 재연됐다. ‘메리 크리스마스 살리기 위원회’라는 단체는 전국적 체인망을 갖춘 백화점 등을 겨냥해 “실내장식에서 사라진 크리스마스를 되돌려 놓을 것”을 요구했다.

또 공립학교에서 생명의 진화론과 함께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적 설계론’은 생명체의 복잡한 진화현상은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설계 없이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이론.

절대로 성경에서 인용하지 않고 순수과학 이론으로 ‘포장’해 자기주장을 내놓고 있긴 하나 복음주의자들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이 같은 복음주의 기독교의 자신감은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뉴저지 주의 일부 교육청이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지 못하도록 했고, 캔자스 주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커뮤니티 트리’로 부르자는 행사가 열렸다.

▽불안한 민주당=민주당은 기독교 보수주의의 확산으로 재집권의 기회가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조지아 주 리토니아에서 열린 ‘흑인연합대회’ 참석자들은 “보수 진영은 교묘하게 의제를 설정해 소모적 논쟁을 일으킨 뒤 이를 공화당의 세력 결집에 활용한다”고 비난했다.

제시 잭슨 목사는 “내 이웃에서 찾아볼 수도 없는 동성결혼 문제를 논쟁으로 만드는 세력이 있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점점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종교 논쟁에 파묻히는 느낌이다.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기독교인이 볼때 할리우드는 쓰레기”▼

“프랑스는 1789년 혁명 당시 전제군주 외에 교회의 독재에도 항거한 역사를 갖고 있는 반면 미국은 애당초 종교의 자유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 건국한 나라입니다.”

헤리티지 재단의 종교전문가 조지프 로콘티(사진) 연구원은 기자가 “유럽과 비교할 때 미국이 너무 종교에 집착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이렇게 설명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미국은 세속 국가인가, 기독교 국가인가.

“특정 종교를 돕는 어떤 법률도 만들 수 없도록 돼 있다는 점에서는 세속 정부가 맞다. 그러나 이 정부도 종교적인 국민을 상대해야 한다. 미국이란 사회는 기독교로 기본적인 민주의식을 유지해 가고 있다. 건국의 아버지는 기독교 신앙 없이는 미국을 지탱할 수 없다고 봤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친(親)기독교적 통치행위가 논란의 대상이다. 대법원이 낙태를 합헌으로 판결했는데 대통령이 낙태를 반대하는 시위대에 격려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헌법 준수 의무를 저버린 것 아닌가.

“수정헌법 1조는 동의하지 않는 종교를 듣지 않을 권리를 준 것이 아니라 어느 종교든지 공개적으로 표현할 권리를 보장한 것이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권리를 희생할 이유가 없다.”

―보수적 기독교단체들은 도덕 재무장을 주장한다. 궁극적으로 미국이 ‘하나님의 나라’가 돼야 한다는 뜻인가.

“할리우드를 움직이는 문화엘리트들은 미국의 기본 가치와 동떨어져 있다. 평균적인 미국인은 할리우드를 거대한 쓰레기통으로 본다. 자녀들에게 폭력과 섹스가 넘치는 프로그램을 보여줄 수는 없다. 미국이 이런 문화상품을 수출한다는 점을 우리는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때문에 기독교인이 막을 수는 없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중립적인 공교육마저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일도 있는데….

“‘너무 중립적인’ 공립학교는 더 이상 기독교 신앙이 설 자리가 아니다. 학교 내에서 기도가 금지됐고, 기독교 역사도 가르칠 수 없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교육하는 중산층 가정이 많이 생겨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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