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재호]慈悲의 경쟁

  • 입력 2005년 2월 10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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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시아 지진해일 참사 돕기 과정에서 돋보인 것은 구호(救護) 경쟁이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앞 다퉈 물자와 구호금을 약정했다. 유엔이 6월까지 9억7700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한 달이 못 돼 무려 60억 달러가 약정됐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이슬람권 달래기’라는 시각이 의외로 많다. 이슬람권의 대미(對美), 대서방(對西方) 적개심을 누그러뜨릴 좋은 기회로 보고 왕창 쏟아 붓기로 했다는 것이다. 정치 현실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얘기다. 성공회대 조효제 교수(사회과학부)는 “전(全) 지구적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커진 증거”로 보기도 한다. 좀 더 진보적인 관점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냉전 종식 후 가열되고 있는 국가간 도덕성 경쟁이 근인(根因)이 아닌가 싶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른바 현실주의(Realism)가 국제정치를 움직이는 준거의 틀이었다. “오직 국가 이익과 힘(power)이 국제질서를 규율한다”고 믿었다. 이런 생각은 1990년대 냉전 종식과 함께 바뀐다. 힘 못지않게 규범과 제도도 중요하다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들이 선의(善意)를 갖고 공동의 규범이나 제도, 기구를 잘 만들기만 해도 평화와 안정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찰스 케글리는 1990년대 초에 이미 달라진 국제정치의 양상으로 민주주의 확대, 경제적 이슈의 중시, 국제법과 국제기구의 효용성 증대, 인권 및 도덕성 중시 등을 들면서 “우드로 윌슨의 이상주의(Idealism)가 부활한 것 같다”고 말하기까지 했다(국제정치 패러다임·박재영·2004). 국제정치를 설명하는 원리로서의 현실주의의 영향력은 여전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국제정치적 행태들이 생겨난 것은 사실이다.

이런 경향을 제도주의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제도주의 아래에선 국가의 도덕성이 상대적으로 중요해진다. 도덕적이지 못한 나라는 국제 규범과 제도의 창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9·11테러로 인한 미국의 일방주의가 국가들 간에 도덕성 경쟁을 가속화시킨 면도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지진해일 피해 구호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마땅하다. 이라크 파병을 감내해야 했던 한미동맹의 현실 속에서도 도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 ‘무기의 양’이 아닌 ‘자비(慈悲)의 양’으로 경쟁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얼마 전 지진해일 피해 현장에서 “훗날의 이익을 생각해서 퍼 주는 나라가 아니라, 그냥 살아남은 이들에게 힘이 되고, 여기 어린이들에게 오래 기억될 착한 나라가 되기 위해 돕자”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냥 ‘착한 나라’만으로도 충분하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면 한류(韓流)도, 휴대전화도, 냉장고도 다 먹히게 돼 있다.

4강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중상주의적(重商主義的) 국력을 지탱해 주는 도덕성의 기반이 있어야 한다. 설도 잊고 지진해일 피해 구호에 힘쓰고 있는 우리 봉사단과 의료진에 거듭 고마움을 전한다.

이재호 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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