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란스키 ‘민주주의론’으로 본 미국의 대북정책 시나리오

  • 입력 2005년 1월 23일 18시 50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일 취임사에서 천명한 ‘민주주의 전파’ 철학은 미국의 대 북한 외교정책에 어떤 변화를 부를까.

나탄 샤란스키 이스라엘 예루살렘 및 이주담당 장관의 책 ‘민주주의론’에는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떠올렸을 법한 대목이 적지 않게 나온다. 이 책은 부시 대통령이 탐독한 뒤 주위에 일독을 권하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내정자가 18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거론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청문회 이후 워싱턴 주변의 일부 서점에선 한때 ‘재고 부족’을 호소할 정도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 “인권은 핵심 안보 이슈”=샤란스키 장관은 독재국가의 인권상황을 안보이슈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옛 소련 수소폭탄개발의 아버지이자 인권운동가인 사하로프 박사를 불러냈다. 사하로프 박사는 “자기 국민의 인권을 경시하는 독재자는 주변국 국민의 인권을 중시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즉, 무력도발이 부를 주변국 국민의 인명피해를 무겁게 느끼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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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란스키 장관은 독재자가 외부에 내미는 화해의 손길 역시 단호하게 평가 절하했다. ‘화해의 손길’을 위장하지만, 실은 독재→억압→창의력 고갈→경제 활력 저하로 이어지는 자체 모순을 위장하고 정권연명을 위한 술책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1970년대 미국이 소련에 합의해 준 데탕트(긴장완화)는 역사를 거꾸로 돌렸다”고 주장한다.

샤란스키 장관은 압제국가의 주민을 3등분했다. 압제체제에 적극 참여하는 확신그룹, 체제의 모순을 파고들어 민주화를 쟁취하려는 반대론자, 그리고 ‘이중사고자(Doublethinker)’의 존재를 그는 강조했다. ‘이중사고자’는 억압구조에는 반대하지만 침묵하며,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오히려 생존을 위해 체제 찬성발언을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그는 “체제의 모순이 깊어갈수록 (확신그룹이 줄고) 이중사고자 그룹의 숫자는 늘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밖에 일시적 안정(세력균형)을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하는 것은 잘못이며, ‘우호적인 독재자’는 눈감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며, 독재국가도 얼마든지 자유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 부시 2기의 대북정책에 대입해 보면?=라이스 내정자는 청문회에서 ‘선(先) 핵처리-후(後) 북한 정권 관리’ 원칙을 밝혔다.

그러나 민주화를 포함하는 북한관리 이슈가 ‘핵문제 처리가 모두 다 끝난 이후에야’ 시작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즉, 5개국이 지켜보는 가운데 북한이 “핵 포기하고 검증받겠다. 경제지원과 안전보장을 해 달라”고 손을 내미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면 북한자유화 카드는 압박수단으로 테이블에 올려질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북한은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도마 위에 오르면 ‘주체’ 운운하며 저항할 명분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샤란스키장관은 1980년대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을 면담할 때 “사우디아라비아의 민주화를 위한 가시적 조치로 해외이동의 자유, 정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신문발행이 가능하도록 조치해 달라”고 건의한 바 있다. 현 부시 행정부도 유사한 요구를 북한에 들이밀 가능성이 없지 않다.

라이스 내정자는 또 인준청문회에서 북한 주민의 장래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남북 접촉의 필요성을 거론했다. 그러나 샤란스키 장관의 주장을 감안하면 이를 부시 행정부의 ‘속내’로 봐야 할지는 의문이다. 샤란스키 장관의 지적대로 김정일 정권의 ‘민족 공조’는 체제모순의 그림자를 감추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해석하는 강경그룹이 부시 대통령 주변에 다수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부시 행정부는 대북 대중외교(public diplomacy)를 공격적으로 전개할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독재국가의 구성원을 독재자-권력핵심세력-반정부세력-말없는 다수로 4등분해 각각에게 ‘맞춤형 메시지’를 던졌다. 샤란스키 장관의 3분법을 연상하게 한다.

부시 대통령이 그의 3분법에 밑줄을 그었다면 향후 미국의 대북 인권외교는 ‘말없는 다수’와 북한 내 반체제그룹 지원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란 전망도 가능하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나탄 샤란스키▼

△1948년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출생

△모스크바 물리학 연구소에서 수학 전공

△1977∼1985년 옛 소련에서 유대인 인권운동을 펼치다 미국 스파이 혐 의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됨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 령, 소련에 석방 요청. 시몬 페레 스 당시 이스라엘 총리의 마중을 받으며 이스라엘로 이주

△이스라엘 예루살렘·해외유대인 담당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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