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러 극동지역을 사들이고 있다”

  • 입력 2004년 8월 24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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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유라시아 대륙으로….” 일본이 최근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적극적으로 러시아 진출에 나서고 있다. 일본 경제일간지 니혼게이자이는 23일 “북한과의 국교정상화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일본 외교의 최우선 순위가 러시아로 바뀌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일본이 경제력으로 러시아 극동지역을 사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치보다는 경제’=그동안 러시아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온 일본의 태도 변화는 극적이라고 할 만하다.

양국은 쿠릴열도 4개 섬의 영유권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아 2차 세계대전 종전 60년이 되도록 평화협정조차 맺지 못하고 있는 상태. 일본은 지금까지 “영토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러시아에 대규모 투자를 자제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이 덕분에 개방 직후 러시아에 뛰어든 한국 기업이 가전과 자동차 시장 등을 선점하는 반사이익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은 “가장 중요한 에너지 공급원이면서 거대시장으로 떠오른 러시아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하는 조짐이 뚜렷하다.

‘실용외교’를 앞세우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도 이런 일본의 태도 변화에 호응하고 있다. 불편한 과거사와 정치적 현안은 일단 제쳐두고 우선 경제 협력부터 해나가자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내년 초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다.

▽‘엔화 앞세우고’=일본은 막강한 경제력으로 러시아에 접근하고 있다. 에너지 개발이 한창인 사할린에는 지금까지 8억2000만달러(약 9467억원)를 투자했다. 미국의 사할린 투자는 1억달러 규모.

일본의 물량공세는 동시베리아 석유를 놓고 중국과 벌인 ‘송유관 전쟁’에서 절정을 이뤘다. 당초 러시아는 ‘중국라인’을 건설할 예정이었으나 일본의 집요한 설득으로 ‘극동라인’으로 방향을 바꿨다.

러시아가 동맹국인 중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마음을 돌릴 정도로 일본이 내놓은 조건은 매력적이었다. 일본은 송유관 건설비용 50억달러를 포함해 총 140억달러(약 16조원)의 투자를 제시했다.

도요타자동차는 연간 1만5000대를 생산하는 자동차조립공장을 2008년까지 모스크바 근교에 세우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러시아에 대한 제조업 직접 투자를 꺼려온 관례를 깨고 일본 기업의 대러 투자가 본격화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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