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함인희/중국의 ‘變面’ 바로보자

  • 입력 2004년 8월 24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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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엔 폭염을 뒤로 하고 중국을 다녀왔다. 시안(西安), 장자제(張家界), 구이린(桂林)을 다녀오는 짧은 일정 속에서 장님 코끼리 더듬듯 할 수밖에 없는 여행이었다. ‘중국다움’에 압도되기도 하다가, 관광지마다 개방 물결의 천박함 속에서 묻어나오던 ‘중국스러움’에 질려버리곤 했다.

▼광대한 대륙, 장대한 역사유적▼

시안에서 진시황의 병마총과 마주하는 순간, 인류 8대 불가사의에 이름을 얹었노라는 안내인의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거대한 제국의 시(始)황제가 행했음직한 무소불위의 권력의 실체가 손에 잡히는 듯했다. 그뿐이랴, 톈쯔(天子)산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수려함과 장대함이 어우러진 산수의 절묘한 장관(壯觀) 앞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옴을 누구도 자제하기 어려웠고, 엘리베이터와 케이블카까지 동원해 관광객을 유인하는 특유의 상술에도 입이 떡 벌어졌다. 장자제에서 밤새워 12시간을 기차로 달려간 구이린. 그곳에선 도시를 휘감아 도는 리(離)강을 따라 좌우로 펼쳐지는 그림 같은 산수에 한 잔 술 기울이노라면 누구라도 시인이 될 것만 같았다.

중국인이 평생토록 못다 하고 죽는 것 세 가지가 있다는데, 하나는 땅덩어리가 너무 넓어 발 닿지 않는 곳이 허다하고, 둘은 한자가 너무 많아 뜻 모를 자가 부지기수요, 셋은 음식이 하도 다양하여 미처 맛보지 못한 접시를 헤아리기 어렵다 한다. 과연 듣고 보니, 13억 인구에 50여개가 넘는 소수민족이 한데 어울려 사는 곳, 꼬박 사흘 낮 사흘 밤을 기차로 달려가야 고향에 닿을 수 있다는 곳,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자연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있고, 무궁무진한 역사의 자취가 여전히 땅속에 묻혀 있는 곳, 이런 곳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의 시야는 얼마나 넓을 것이며 상상의 폭은 또 얼마나 무한할 것인가.

그러다 창밖으로 눈을 돌려 지금 이 순간의 적나라한 생존 현장과 마주치니, 거기엔 우리의 60년대 자취가 복제된 채 반복되고 있는 듯했다. 중국말조차 어설플 것 같은 서너살 된 꼬마가 “오이가 여서 개 한구 돈 첸원”이라고 외치며 우리 관광객의 옷자락을 잡을 때면, “아주마 가방이 첸원, 싸다 예쁘다”를 연발하며 지치지 않고 따라오는 여인네의 거친 손길이 닿을 때면, 우리도 예전엔 먹고살기 위해 이렇게 악을 썼겠거니 싶어 마음이 슬그머니 아파온다.

한데 마음 누그러짐도 잠시, “할버지 가마, 한구 돈 만원”을 외치다간 흥정을 하면 그 자리에서 ‘오천원’을 지나 금방 ‘이천원’을 부르는 것을 보면, 거스름돈은 아예 안 내주거나 속이기 일쑤요, 심지어 공항 면세점에서조차 공식 환율(1 대 150)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계산할 때면 괜스레 약이 오르다 못해 화가 치밀기까지 한다.

▼종잡기 어려운 실체… 혜안 키울때▼

이제 중국은 세계 상권을 주름잡던 전통을 이어받아 화상(華商)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13억 인구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자마자 중국은 명실 공히 세계의 굴뚝이 되었고, 개발에 가속이 붙는 순간 세계는 원자재 파동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발전 단계는 지름길도 왕도도 없고 건너뜀도 비켜감도 불허하는 것 같다. 지금처럼 ‘이 물건이 혹 가짜는 아닌지’ ‘나만 손해 보는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 속에 신뢰가 확보되지 않는 한, 화장실이 악취에 발 들여놓기가 여전히 불편한 한, 호텔방에 준비된 물맛조차 의심이 가는 한 중국의 갈 길은 꽤나 멀 것 같다. 이들 과제는 국민의 생활수준이 궤도에 오르면서 더불어 의식수준 또한 선진화될 때만 해결 가능하리라.

오늘의 중국은 1분 동안 최대 37번이나 가면을 바꾼다는 중국의 전통기예 ‘볜찬(變面)’처럼, 무수히 다채로운 얼굴을 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중국을 만만히 보아서도, 지레 겁을 먹어서도, 필요 이상으로 미화해서도 안 될 우리로선, 종잡기 어려운 중국 볜찬의 실체를 하나하나 치우침 없이 포착해낼 수 있는 혜안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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