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보니]앤드류 샐먼/‘머리’보다 ‘가슴’이 앞서는 사회

  • 입력 2004년 8월 13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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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외국인들의 대답은 비슷하다. ‘열정적이다’ ‘활력이 넘친다’ ‘역동적이다’….

한국인들의 독특한 집단 열정은 2002년 월드컵 기간 중에 확실히 표출됐다. 외국인들은 처음에 몇천명으로 시작해 몇십만, 몇백만명이 모여 자국 팀을 응원하던 한국인들의 그 굉장한 열정에 놀랐다.

한국의 TV를 보고 있노라면 ‘로맨틱 코미디’로 분류되는 프로그램조차 열정적이다. 깡패들과의 주먹질, 빠른 속도의 추격전, 주인공이 우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멜로드라마가 아시아 전역에 활발히 수출되고 있는 것을 보면 절제된 감정의 소유자인 일본인이나 싱가포르 사람들에게조차 한국적인 열정이 통하는 듯싶다.

한국인의 열정적인 기질이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은 없다. 특히 스포츠나 문화 분야에서 표출되는 한국인의 열정은 외국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인의 ‘감정주의’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한 국민적 토론에 투영될 때 발생한다. 대다수 한국인은 주한미군, 국제협약 체결, 핵 폐기물 처리 등의 문제에 대해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

내 생각에 한국인에게 있어 감정적 대응이란 진심어린, 그래서 정직한 의견임을 의미하는 듯하다. 흥분해서 목소리 높여 외쳤을 때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반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차분한 토론은 덜 매력적이고, 아마도 덜 설득력 있게 들리는 듯하다.

최근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는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 이후에 그가 느꼈던 좌절감에 대해 토로한 바 있다. 당시 성조기를 태우는 등 흥분했던 한국인들에게는 미국이 아무리 논리적 설명을 해도 그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감정주의는 단지 젊은이나 진보주의자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대통령을 탄핵한 것과 관련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 과연 이 두 당은 감정적으로 탄핵 주장을 밀고 나갈 때 감수해야 할 위험에 대해 이성적인 계산을 했던 것일까.

한국은 앞으로 수많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대중(對中) 관계 정립, 불법 노동쟁의 대처, 부도덕한 기업가 처벌, 부안사태로 연기된 원전수거물관리센터 건립 등은 감정적으로 대응할 만한 소지가 다분한 사안들이다. 이런 사안은 몇몇 이해집단에 의한 공포분위기 조성보다는 합리적 토론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때 리더십의 역할은 감정적인 반응에 휩쓸리지 않고, 성숙하고 민주적인 방법을 통해 토론의 틀을 잡는 것이다.

‘가슴’으로 대응할 문제가 아니라면 이성적 계산이 중요하다. 자존심이나 감정은 적절히 통제돼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약력▼

1966년 영국 출생으로 런던대에서 아시아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으며 1997년 이후 미 워싱턴타임스 서울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 음식을 좋아해 서울의 맛집을 소개하는 ‘Seoul Food Finder’라는 책을 냈다.

앤드류 샐먼 워싱턴타임스 서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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