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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5월 2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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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적 화제를 모은 ‘술 안 취하는 약’ RU21을 개발한 러시아의 예브게니 마예프스키 박사(59·의학)는 “이 약이 오히려 과음을 부추기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술에 대한 연구를 해 음주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러시아 학술원 회원이며 생물물리학이론실험연구소(ITEB) 부소장인 마예프스키 박사는 인공혈액 ‘블루 블러드’의 개발에도 참여했던 세계적 과학자다.
그는 옛 소련 시절 동료들과 함께 숙취를 제거하는 물질을 개발했다. 이 물질은 술에 좀처럼 취하지 않도록 하는 효능 때문에 2000년 미국계 회사가 제조하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하지만 마예프스키 박사는 이 약 때문에 오히려 피해를 봤다고 호소했다. 판매사가 “옛 소련 시절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들이 술에 취한 상대방으로부터 비밀을 빼내기 위해 개발한 약”이라고 광고했기 때문. 이 때문에 KGB약(KGB Pill)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그는 “마케팅을 위해 지어낸 얘기로 KGB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RU21이 대박을 터뜨렸어도 정작 개발자인 러시아 과학자들은 ‘자본주의에 어두워’ 큰 돈을 벌지 못했다고 한다. 마예프스키 박사는 최근 동료들과 직접 O&S라는 회사를 세워 간과 뇌를 알코올로부터 보호하는 신약을 개발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술 많이 마시기로 유명한 한국 시장도 겨냥하고 있다.
9월 강연차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 그는 “러시아와 한국의 폭음 문화가 비슷해 놀랐다”고 말했다. 러시아인들은 보드카와 맥주를 섞은 ‘요르시’라는 폭탄주를 마신다. 그는 “연구 결과 폭탄주는 최악의 술”이라고 경고했다.
폭음만큼 해로운 것은 만성 음주. 매일 술을 마시면 인체가 알코올에 적응해 마치 ‘술이 세지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이는 마약중독 같은 효과일 뿐 사실은 몸에 큰 타격을 준다는 것.
그에 따르면 주량은 민족마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체질적으로 술에 약하다. 한국인과 인종적으로 유사한 몽골인도 술에 약한 편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가장 술에 약한 체질은 아랍인. 마예프스키 박사는 “이슬람교가 술을 금지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된다”고 말했다. 핀족(핀란드인)은 술을 마시면 안 되는 당뇨병이 발생하기 쉬운 체질이다. 이 때문에 핀란드 정부가 강력히 음주를 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예프스키 박사는 ‘술 안 취하는 약’은 의학적인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셔야 하는’ 사회적 필요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인이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면서 “과음을 안 해도 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술 깨는 약’ 개발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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