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결단 대만선거, 혈육도 결딴냈다

  • 입력 2004년 3월 24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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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는 일변일국(一邊一國·서로 다른 나라).’

정치노선 때문에 갈라선 형제를 빗댄 이 말이 오늘날 대만의 ‘자화상’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있다.

주인공은 대만 타이중(臺中)현 타이핑(太平)시에 사는 린융싱(林永興) 형제. 이들은 4년 전만 해도 이웃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우애가 좋았다. 40대인 이들은 결혼해 줄곧 한 집에 같이 살았고, 서로 의지하고 지냈다. 집안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형제 사이에 금이 간 것은 2000년 총통선거 때. 형 융싱씨는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후보를 지지했지만 동생 젠마오(建茂)씨는 국민당 롄잔(連戰) 후보를 찍었다.

형은 “국민당 부패 종식과 대만 독립을 위해 천 후보에게 표를 던져야 한다”며 동생에게 강권했다. 동생은 “능력은 롄 후보가 최고”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형제는 이때 크게 싸웠다. 정치적 견해 때문에 둘이 다툰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 형제는 다시 우애가 좋던 옛날로 돌아갔다.

4년이 흘러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천 총통과 롄 후보의 재대결이었다. 특히 이번 선거는 천 총통의 ‘일변일국론’과 롄 후보의 ‘양안 안정론’의 대결. ‘대만과 중국은 각각 하나의 나라’라는 일변일국론은 천 총통이 2002년 제시한 것이다.

이번 선거는 현지 언론의 표현대로 상대의 목을 베지 않으면 지는 치열한 접전이었다. 정치인들은 지역감정을 조장했고, 대만 출신 번성런(本省人)과 본토 출신 와이성런(外省人)의 반목과 증오는 깊어졌다.

형제도 다시 쪼개졌다. 선거 한 달 전 형은 집 대문 오른쪽에 녹색 깃발(천수이볜)을 대나무에 달아 내걸었다. 동생도 이에 질세라 대문 왼쪽에 청색 깃발(롄잔)을 걸었다.

형제는 이후 밥도 같이 먹지 않았다. TV도 서로 다른 채널을 보며 지지하는 후보가 나오면 박수를,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나오면 욕을 퍼부었다.

선거 이틀 뒤인 22일 대문의 깃발은 모두 녹색으로 바뀌었다. 동생이 부정선거 항의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가족들을 끌고 타이베이(臺北)로 올라가자 형이 깃발을 바꾼 것. 그래도 형의 분은 풀리지 않았다. 다음날 형은 동생이 돌아오건 말건 상관 않고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이들이 언제 다시 화합할지는 기약할 수 없게 됐다.

타이베이=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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