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박원재/日 네티즌 '감정보다 논리'

  • 입력 2004년 1월 27일 18시 59분


26일 밤 기자는 일본인 독자에게서 한 통의 e메일을 받았다. 이 날짜 본보 A1면에 실린 ‘일본 정부, 하이닉스반도체에 상계관세 검토’ 기사와 관련한 항의성 e메일이었다.

사용 언어는 물론 일본어. 인터넷 동아닷컴의 일본어판을 읽고 보내온 e메일이었다. 기사 내용에 대해 깍듯이 예의를 갖추면서도 나름대로 근거를 들어 가며 반론을 폈다.

‘한국은 값싼 저용량 D램에서만 앞설 뿐 첨단제품은 일본이 우위’ ‘메모리 반도체는 일본 업체들이 채산이 안 맞아 한국과 대만에 제조기술을 넘겨준 것’ ‘한국 반도체 공장의 핵심설비는 여전히 일본제 아닌가’ 등등.

정확한 신상은 밝히지 않았지만 일본의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이 꽤 강한 독자인 듯했다. 논리의 옳고 그름을 떠나 외국 기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차분하게 개진하는 태도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일본 정치인의 망언이나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처럼 민감한 문제가 보도되면 동아일보 도쿄지사에는 종종 항의전화가 걸려온다. 우익성향의 일본인들은 다짜고짜 상소리부터 해대기도 한다.

하지만 양국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이런 부류는 부쩍 줄었다. 그 대신 e메일로 자신의 주장을 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의 “한일병합은 조선인이 원한 것”이라는 망언을 비판했을 때는 그를 두둔하는 세 통의 e메일이 왔다. 한 일본인은 “이시하라씨가 망언을 많이 하지만, 난 그가 치안문제를 진지하게 다뤄서 좋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의견이 ‘보통 일본사람’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e메일을 읽다 보면 양국간에 놓인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작업이 쉽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

그러나 일본인 가운데 자신들의 언행이 한국 언론에 어떻게 비칠지 신경을 쓰는 이가 많아진 것은 분명 발전이다.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의 경질과 새 장관의 성향이 주요 뉴스로 취급될 정도로 한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일본에서도 관심거리다.

자기 나라 얘기가 인접국에 추하지 않게 비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두 나라 독자가 똑같지 않을까.

박원재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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