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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2월 14일 23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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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4월 18일 바그다드가 미군에 함락되기 전에 바그다드를 떠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는 4월 초 바그다드의 알 아으다미야 지역에 예고 없이 모습을 드러내 주민들과 직접 만났다. 종전 후 체포된 이라크 장성들은 당시 나타난 이가 대역이 아니라 진짜 후세인 전 대통령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 같은 ‘깜짝 쇼’를 마지막으로 후세인 전 대통령은 본격적인 도피 행각에 나선 것으로 관측돼 왔다.
앞서 후세인 전 대통령은 3월 20일 바그다드의 이라크 중앙은행에 친필 서한을 보냈으며 이를 받아든 은행 간부들은 대형 스테인리스 박스 33개에 100달러짜리 지폐를 트럭 3대에 나눠 실었다. 당시 실린 돈은 10억달러 이상이며 대부분 미군에 의해 회수됐으나 1억3000만달러가량이 아직 회수되지 않았다. 이는 후세인 전 대통령의 도피 자금 및 게릴라 지원 자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후세인 전 대통령이 사라진 후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추측만이 난무했다. 시리아로 넘어갔다는 설도 있었으나 그가 티크리트에서 체포됨으로써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났다. 두 아들 우다이와 쿠사이가 사살된 모술 쪽으로 달아났다는 설, 황무지가 광활한 이라크 ‘서부’에 은신하면서 게릴라전을 지휘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8일 존 애비제이드 미군 중부사령관이 지역 부족장 회의를 주재했던 라마디에서 후세인 전 대통령 역시 옛 집권 바트당 간부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달 26일 레이먼드 오디르노 미 제4보병사단장은 “후세인 전 대통령은 한 장소에 머무르고 있지 않으며 계속 옮겨 다니고 있다”고 밝혔다.
후세인 전 대통령은 도피 중에도 자신의 건재함을 알려왔다. 4월 9일 베레모와 군복 차림으로 반미 항전을 독려하는 비디오를 촬영해 방송한 것을 비롯해 11월 16일자로 다시 성전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육성 메시지가 알 아라비야 방송의 전파를 타는 등 모두 6, 7회 육성 메시지를 내보냈다.
미군의 추적도 집요해 7월 29일 티크리트 지역에서 미 제4보병사단 병력이 후세인 전 대통령의 ‘종신 경호원’ 1명과 장성 1명을 생포했다.
미 제4보병사단이 주축이 된 후세인 생포 작전은 10월 말 티크리트를 철조망으로 봉쇄하면서 최후 단계에 접어들었다. 미군은 당시 티크리트의 15세 이상 남성 전원을 대상으로 출입자 파악에 나섰다. 작전을 주도한 스티브 러셀 중령은 “저수지에 물이 마르면 곧 악어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당시 티크리트 경찰서장인 무즈히르도 “후세인 전 대통령이 티크리트 안팎에 있다는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이라크 경찰의 합동작전이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합동작전은 1개월여 후인 13일 저녁 결실을 보았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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