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美인디애나주립대 인권법센터 조지 에드워드

입력 2003-12-09 18:30수정 2009-10-10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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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월가의 변호사에서 약자들의 인권을 연구하는 학자로 변신한 조지 에드워드 미국 인디애나주립대 인권법센터 소장. 그는 “살다 보니 돈이나 명성보다 중요한 것이 있더라”는 말로 자신의 선택을 설명했다. -안철민기자
1990년대 초반, 미국 뉴욕 월가의 ‘잘나가던’ 한 청년 변호사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나의 마음과 나의 열정이 이끄는 대로 살고 싶다.”

당시 약관을 갓 넘은 이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인수합병(M&A) 전문가를 끌어당긴 것은 대기업 인수 건도,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도 아닌 약자들의 인권 문제. 흑인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을 직접 경험하며 쌓아 온 관심이었다.

인간의 권리를 향한 가슴속 울림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그는 수억원대의 연봉을 마다하고 짐을 싼다. 5년 동안 누린 화려한 월가 로펌 변호사의 삶은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미국 인디애나주립대(인디애나폴리스) 인권법센터의 조지 에드워드 소장(44)은 이렇게 훌쩍 인권 연구에 뛰어든 이유를 “살다 보니 돈이나 명성보다 중요한 것이 있더라”는 한마디로 설명했다.

“정말로 뭔가 결정적인 계기가 없었느냐”며 반신반의하는 기자에게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우냐”고 반문했다.

에드워드 소장은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인 10일을 한국에서 맞는다. 인디애나주립대 로스쿨 학생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최근 방한한 것. 그는 9일 김창국 국가인권위원장을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하고, 서울대 한상진 교수와 함께 학생들에게 인권 강의를 하는 등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인디애나주립대는 이미 세계 35개국의 70개 인권 관련 단체와 함께 인턴십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이는 그가 1997년 대학 내에 인권센터를 창립한 뒤 줄기차게 추진해 온 핵심 교육활동이다.

“학생들에게 더욱 넓은 시각에서 인권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었어요. 르완다, 코소보 등지는 물론이고 스위스, 캐나다 같은 선진국에도 인권 문제는 존재해요. 그들의 아픔을 함께 경험하고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기회입니다.”

경쟁을 통해 선발된 학생들은 각 나라 인권단체에서 10∼20주간 인권자료 수집과 연구 활동을 한다. 경비 전액과 학점을 주면서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학은 미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에 오기 며칠 전 하버드대에 간 일이 있었어요. 인권센터 앞에 서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내가 재학 중이던 1984년에 만들어진 곳인데 이제 나도 내가 몸담은 대학에 인권센터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습니다. 공부에 허덕이던 학창 시절이 떠오른 것은 유쾌하지 않았지만요.”

하버드대 박사 과정을 밟을 당시 교내 학술지인 ‘하버드 로 리뷰’와 ‘하버드 인터내셔널 로 저널’의 편집장으로 뽑혀 활동하기도 했다. 남다른 능력과 인격이 갖춰지지 않는 한 유색 인종에게는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자리다.

이런 그가 인권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4년 여름방학에 태국 방콕에 갔다가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의 난민들을 위해 설치된 캠프를 방문했던 때다. 현장에서 지켜본 난민들의 열악한 인권 상태는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이었다. 이듬해부터 방학 때마다 수단 에티오피아 등지의 인권 프로그램, 유엔고등난민판무관실 등을 찾아다니며 국제인권법 분야의 경험을 쌓았다. 졸업 후 기회가 닿아 일류 로펌에 첫 직장을 얻었지만, 당시의 기억은 기어이 그의 인생길을 돌려놓았다.

“동성애자, 장애인, 여성, 유색인종 등 소수자 집단은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인권을 침해받고 있어요. 이는 당사자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이뤄지죠. 9·11테러 이후엔 미국에서의 인권 침해도 훨씬 노골적입니다.”

“국가 안보를 지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 인권수호의 가치를 포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는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외국인 노동자와 중국동포 등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불합리한 처우 문제 등을 지적했다. 또 “동성애자임을 밝힌 연예인이 방송사에서 쫓겨나지 않았느냐”며 한국의 동성애자 인권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에드워드 소장은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설립 및 국제형사재판소의 판결 근거가 되는 로마 법령의 제정 작업에도 참여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인권보호를 위한 활동해 온 인물. 그는 “북한처럼 인권문제를 정식으로 거론하기 힘든 곳에도 인권 차원의 교류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며 인권 사각지대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조지 에드워드 소장은…▼

△1959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출생

△1981년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졸업

△1987년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

△1987∼91년 뉴욕 월가 소재의 로펌인 ‘크래바스, 스웨인 앤드 무어’에서 인수합병 전문 변호사로 근무

△1992∼96년 홍콩대 법학과 교수

△1997∼현재 인디애나 주립대 법학대학원(인디애나폴리스) 국제인권법 교수, 법학대학원 내 국제인권법센터 소장

△2000년 미국 시카고 드폴대 법과대학원 방문교수

△2001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국제법 연구센터 방문교수, 페루 산페드로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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