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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1월 28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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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0시간의 극비작전이 시작된 것은 26일 저녁. 부시 대통령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수행원들과 함께 미 텍사스 크로퍼드목장을 몰래 빠져나왔다. 차편도 일반 승용차였다.
텍사스주립기술대 활주로에 대기 중이던 공군 1호기로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45분. 도중에 교통체증을 만났으나 신원을 밝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때 “3년 만에 처음 교통체증을 겪는다”며 농담을 던졌다.
이날 아침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 부부는 크로퍼드 목장에 도착해서야 아들의 극비여행 사실을 알았다. 부인 로라 부시 여사와 두 딸도 출발 직전 통보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전에 알고 있던 인물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콜린 파월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핵심참모뿐이었다.
공군 1호기가 이라크를 향해 나는 동안 공보팀은 동행한 취재진에 “계획이 유출되면 공군 1호기를 회항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공보팀은 시종 연막전술을 폈다. 부시 대통령이 목장에서 가족과 함께 지낼 것이라며 식사 메뉴까지 친절히 설명했고,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 체류하는 중에는 “크로퍼드에서 세계 전역의 미군 병사들과 통화 중”이라고 둘러댔다.
부시 대통령 일행이 탄 공군 1호기는 미사일 공격 등을 우려해 왕복 27시간의 비행 내내 기내의 모든 불을 끄거나 창문을 가린 채 비행했다. 그러나 이라크 바그다드로 가던 중 영국항공(BA)의 조종사가 공군 1호기를 알아봐 비밀 여행이 탄로날 뻔했다. BA조종사가 무선교신으로 “혹시 내가 본 게 미 공군 1호기입니까?”라고 물었고, 공군 1호기 기장은 공군 1호기보다 작은 “걸프스트림 5호기”라고 둘러댔다.
바그다드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어둠이 깔릴 무렵. 부시 대통령은 장병들에게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극적인 등장효과를 위해서였다.
폴 브리머 미 이라크 군정 최고행정관은 만찬장에서 최고위직 당국자가 대통령의 메시지를 대독할 것이라고 말한 뒤 단상 뒤편을 향해 “나보다 더 높은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 순간 커튼 뒤에서 부시 대통령이 나타났고 영문도 모른 채 1시간 넘게 대기했던 병사들은 식탁과 의자 위로 뛰어오르며 환호했다. 부시 대통령은 병사들에게 일일이 음식을 나눠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방문은 군 최고통수권자로서 전장에 나가 있는 군 장병들과 고락을 함께한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제스처로 보인다. 그러나 대선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인기를 노린 ‘깜짝쇼’라는 비판도 있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전투지역을 방문한 대통령은 6명에 불과하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걸프전 준비가 한창이던 1990년 추수감사절 때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의 미군 기지를 7시간 동안 방문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은 52년 한국을,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은 66년과 67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69년 전쟁 중이던 베트남을 방문했다. 공군 1호기가 부시 대통령을 태우고 바그다드를 이륙해 안전지대로 빠져나온 뒤 주요 외신들은 ‘긴급뉴스’로 그의 이라크 방문사실을 일제히 보도했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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