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美軍장갑차 점거' 충격]거꾸로 가는 학생 운동

  • 입력 2003년 8월 8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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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시설 기습 시위 등 최근 한총련의 행태를 놓고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대체로 ‘거꾸로 가는 학생운동’이라며 우려했다. 대학생들이 냉엄한 국제관계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80년대 운동권’ 시각에 머물러 있다며 안타깝게 여기는 의견도 있었다. 또 정부의 한총련 합법화 검토 및 수배해제 조치가 지나치게 온정적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는 8일 성명을 통해 “한총련 학생들의 시위에 대다수 국민은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한다”며 정부에 △한총련 조직의 발본색원 △불법시위자와 배후세력의 색출 △이적단체 합법화와 수배해제 조치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박효종(朴孝鍾) 교수는 “한총련의 노선변경에 대해 국민들의 기대가 높은데 여기에 부응하지 못하는 듯해 안타깝다”며 “편협하고 급진적인 시각만을 가지고 기습 시위를 일삼는 것은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최병일(崔炳鎰) 교수는 “한총련이 미군의 군사훈련이 진행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시위를 벌인 것은 결코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 “한총련이 법 테두리를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일반 국민들의 호응을 받을 수 없다”며 “극단적인 집단행동은 과거의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몰라도 지금은 통용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양대 총학생회장 신진수씨(27·법학과4)는 “민주화된 사회에 살면서도 예전 운동권 선배들이 물려준 운동 방식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연세대 정외과 양승함(梁勝咸) 교수는 “국제적으로 한반도의 북핵문제가 온건한 분위기 속에 협상단계에 들어간 상황임을 감안해야 한다”며 “한국 내 반미시위가 많이 일어나면 결국 한국의 입지는 좁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홍상영(弘相榮) 부국장은 “학생들이 반미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면서 “그러나 불법적인 시위를 한 것에 대해서는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참여연대 이태호 정책실장은 “학생들의 시위 방식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지적은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과 한총련의 이적단체 규정은 별개의 문제이므로 ‘한총련 합법화’ 문제가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배경래 간사는 “한총련 학생들이 당국으로부터의 수배해제나 사면이라는 현안에 위축됨 없이 문제의식을 드러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한총련 투쟁노선 변한게 없다”▼

올해 초 출범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11기 집행부는 당초 새로운 학생운동 조직을 표방하고 나서는 등 온건파로 분류됐다. 하지만 최근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미군 시설 기습 시위가 꼬리를 무는 등 실제로는 전혀 변한 것 같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검찰과 경찰의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한총련 내부의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노선투쟁의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

검찰의 한총련 수배자 79명 불구속 수사 방침 등 화해무드 조성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기습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라는 것.

7일 미군 사격장에 난입해 장갑차에 올라타는 등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집회에 대해 한총련측은 “한총련이 직접 계획한 집회는 아니지만 미군 부대의 한국 내 훈련에 반대하는 입장은 같다”며 “지지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한총련 소속이 대부분이지만 1일 발대식을 갖고 전쟁 반대,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을 촉구하는 서명운동 등을 전국 각지에서 펼치고 있는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 ‘통일선봉대’가 계획하고 주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한총련 11기 한 간부는 “이번 집회는 한반도에 전쟁위협이 있다고 보고 시민들에 대한 홍보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수배해제나 한총련 합법화와는 별개의 문제”라며 “미군 부대의 한국 내 훈련은 과거에도 반대해 왔으며 앞으로도 반대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한총련 내부에 불협화음이 일고 있다는 증거는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한총련 11기 의장 정재욱씨(23)는 지난달 대학 전문 인터넷 매체인 ‘유뉴스’와의 회견에서 “7, 8월 논의를 거쳐 9월 초 열리는 한총련 하반기 대의원대회에서 새 조직 건설에 대한 구체적인 경로를 확정지을 계획”이라고 밝히는 등 과거의 한총련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갈 것을 시사했다.

그러나 남총련, 경기동부총련 등 ‘자주’ 계열의 한총련 강경파는 수배자 불구속 수사조치에 대해서도 “한총련 내부 분열을 일으키려는 이번 조치를 받아들이지 말고 다시 투쟁에 나서야 한다”며 “한총련 중앙집행부가 정부와 타협하는 것을 막겠다”고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한총련이 겉으로 보면 정부와 분위기가 좋다고 하지만 사실은 분위기가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며 “의장인 정씨의 성향이 부드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의장 개인 권한이 별로 없으며 실제로 한총련은 여태까지 막후의 선배들이 움직여 왔다”고 말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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