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美軍재편 신호탄 올랐다…美-사우디 새국면 맞아

  • 입력 2003년 4월 30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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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 미군재편 작업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시작으로 막이 올랐다. 이라크전 포성이 멎자마자 사우디 주둔 미 합동공군작전센터(CAOC)가 카타르로 이미 이전했고 프린스 술탄기지의 미 공군전력도 여름이 지나기 전 옮겨간다. 사우디에는 올해 말까지 500여명 규모의 비행훈련 인력만 남을 예정.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재임시절부터 이어져 온 양국의 끈끈한 군사 외교관계는 이에 따라 큰 변화를 맞게 됐다.

▽전 세계적 미군 재편 전략의 일환=사우디에서의 미군 철수는 극동아시아 유럽지역 등 지구촌 차원에서 벌어지는 미군재편 작업의 하나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내 미군의 일부 거점도 현재 서유럽에서 동유럽으로 옮길 수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와 함께 △주한미군 3만8000명의 감축 및 주둔지 이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미군기지 처리문제도 가능한 한 조속히 매듭지을 태세여서 지구촌의 군사력 균형은 급속히 변화할 전망.

▽사우디와 미군의 끈끈한 관계=사우디와 미국의 군사협력은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옛소련에 맞서 전술핵을 사우디의 다란 공군기지에 배치하면서 시작됐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또 60년대 이후 국제유가를 적절히 조절하는 완충역을 맡았고, 미국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최신 전투기를 판매하는 등 사우디 왕정을 지원했다.

특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엔 사우디가 국제원유가 하락세를 선도해 원유를 팔아 외화를 벌어들였던 소련경제를 멍들게 하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반기를 든 무자헤딘 세력을 미국과 함께 지원하기도 했다.

▽왜 철수하나=사우디 주둔 미군은 1991년 걸프전 이후 5000명으로 늘었다. 이라크 남부 ‘비행금지구역’을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미군이 이슬람 성지인 사우디에 장기주둔 체제를 구축하자 이슬람 신도들의 반발이 극심해졌다. 알 카에다의 리더인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군의 사우디 주둔을 ‘이슬람의 자존심을 짓밟는’ 상징적 사건으로 간주, 예멘에 정박한 미국 전함에 자살폭탄 테러를 가했으며 급기야 9·11테러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9·11테러 용의자들 상당수가 사우디 국적으로 드러나 미국 내 반(反)사우디 정서 역시 커져왔다. 양국 정부는 이에 따라 미군의 사우디 주둔에 따른 비용이 커져가고 있다고 판단, 기지 이전을 결정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파장=미군 철수로 일단 사우디의 실질적 통치자인 압둘라 왕세제(79·파드 국왕의 동생으로 왕위세습 1순위)의 정치적 입지가 개선될 전망이다. 양국 관계의 냉각을 우려하는 일각의 시각에도 불구하고 압둘라 왕세제는 △미국이 여전히 사우디의 석유를 필요로 하고 △중동과 미국간 완충역을 지속적으로 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우디 미래를 낙관한다. 물론 미국 역시 사우디의 경제적 파트너이자 보호자 역을 자임하고 있다.

다만 기지 이전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침공과 팔레스타인 문제 등으로 중동에 확산된 반미(反美)정서가 수그러들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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