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日 정상, 이라크戰 '전전긍긍'

  • 입력 2003년 3월 14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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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어 "어쩌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사진)의 한숨 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버해협 건너편에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반전 버티기’로 40년 정치생활 중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15일자)는 블레어 총리 사임 후 집권 노동당 2인자인 고든 브라운 경제장관이 총리가 됐을 경우를 상정한 시나리오를 실었다. 유엔 결의 없이 영국이 이라크전쟁에 돌입할 경우 블레어 총리가 당내의 거센 사임 압력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 122명은 “전쟁 명분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공개 선언한 데 이어 최근 같은 당 소속 클레어 쇼트 국제개발장관은 블레어 총리가 ‘무모한 전쟁’을 벌일 경우 사임하겠다고 공언했다. 당 소속 의원들은 유엔 승인 없이 영국이 참전할 경우 블레어 총리 축출을 위한 긴급회의까지 열겠다고 을러대고 있다.

블레어 총리가 이라크에 대한 최후통첩을 담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2차 결의안을 완화한 수정안을 제시한 것은 이런 처지에서 나온 고육책(苦肉策)이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 역시 일축해 블레어 총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기를 거부했다. 총리 대변인이 “프랑스가 영불(英佛) 관계에 독(毒)을 타고 있다”며 독기 어린 논평을 낸 것은 블레어 총리의 분노와 좌절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블레어 총리가 국내 여론 때문에 주춤하자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영국 없이도 전쟁할 수 있다”고 발언해 그의 뒤통수를 때렸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14일 “블레어 총리는 유럽에 등을 돌려 영국을 미국의 51번째 주(州)로 만들기보다 유럽연합과의 무역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이성적”이라고 비꼬았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고이즈미 "꼬이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사진) 일본 총리가 미국의 이라크 단독공격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를 취해 야당 당수들로부터 “총리로서 자질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고이즈미 총리는 13일 민주 자유 공산 사민 등 4개 야당의 대표들과 잇달아 개별 회담을 갖고 이라크 사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자리에서 야당 당수들이 유엔 안보리의 결의없이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감행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고 묻자 그는 “유엔의 논의가 어떻게 될지 몰라 뭐라고 말할 수 없다. 그때 분위기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도이 다카코(土井たか子) 사민당 당수가 “전쟁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하고 물은 질문에도 “아직 (답할) 시기가 아니다”며 특유의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자유당 당수는 “아무 의미없는 한심한 회담이었다”며 “전쟁이라는 문제를 분위기로 판단하겠다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간 나오토(菅直人) 민주당 대표도 “총리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는 것은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자질이 의심된다”고 꼬집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에 대해 “유엔 결의가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그동안 유엔 결의없는 미국의 단독공격을 지지하는 속내를 내비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아직 결정된 방침이 없다’며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해 왔다.

북한 핵문제 등을 감안해 미국과의 동맹체제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과 국내 반전여론이 거센 상황에서 섣불리 미국 편에 섰을 때의 정치적 위험성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풀이가 유력하다.

그는 최근 “여론을 추종하면 정치를 망칠 수 있다”고 말했다가 국민 여론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라크 문제로 또 한번 구설수에 오르게 됐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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